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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거리 두기 무색하게 하는 야외술판[벗드갈의 한국 블로그]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입력 2021-07-02 03:00업데이트 2021-07-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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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특히 높아 보인다. 멋진 몸만들기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고 건강한 먹거리에도 관심이 많다. 이른바 ‘밥심’을 중시하는 것은 인사말에서부터 느껴진다.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지나치게 될 때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밥 먹었어?”라는 질문이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한국 문화를 잘 몰랐을 때엔 “왜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나?” “나와 같이 식사하고 싶나?” 같은 생각들을 하곤 했지만 이제 뜻을 이해했다.

어디를 가나 산책로와 공원이 많다는 것도 한국 생활의 좋은 점이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우리 집 근처에 도림천 산책로가 있다. 이곳에서도 산책하거나 열심히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 임신 중인 나도 최근 몇 달 동안 아이 손을 잡고 천변을 산책해왔다. 도림천은 오리 가족은 물론 왜가리 같은 철새, 물고기 등 다양한 동물을 구경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 만점인 곳이다. 도심 속 자연을 느낄 수 있어 아이에게도 엄마들에게도, 또 운동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운 장소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던 이 산책로가 가고는 싶지만 가기 부담스러운 곳이 돼 버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내에서 모임이 어려워지자 도림천으로 몰려와 술판을 벌이는 이들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좀처럼 줄지 않은 시국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커녕 가깝게 달라붙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식당이나 술집은 문을 닫았지만 그들이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의 문은 한참이 지나도록 닫혀 있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음주 장면을 보게 된 아이가 “엄마, 서울역에서 사람들이 땅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데 여기 이 사람들도 집이 없는 사람들이야?” “사람들은 왜 쓰레기 정리 안 하고 그냥 가요?” 같은 질문을 하니, 어른으로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지곤 한다. 모두가 이용하는 쾌적한 공원이 어느 순간 술판이 돼 버린 모습에 몹시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공장소에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는 게 걱정이 돼 관악구 공공시설관리공단에 민원을 몇 차례 넣기도 했다. 그런데도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친절한 공무원의 답변만 이어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가게, 식당에서 모임 인원이나 운영시간을 제한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집 근처 천변 산책로에서 매일매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있으니 실내뿐 아니라 야외 술판처럼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좀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술을 마신 후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산책에서 술판의 젊은이들이 애정 행각을 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목격했다. 더불어 이들이 술자리를 끝낸 후 남기고 간 음식물 쓰레기는 길고양이들의 먹이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길고양이들이 급증하면서 고양이 배설물 문제까지도 심각해지고 있다. 맑은 공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술자리를 마친 뒤에 남은 쓰레기와 길고양이 배설물, 갑자기 몰려든 고양이 울음소리를 함께 보고 들으면서 산책을 하는 것이 쾌적한 환경은 분명 아닌 듯하다.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애초 7월 1일부터 변경될 예정이었던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조치가 한 주 더 미뤄졌다. 그러는 동안 야외 술판도 한동안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앞으로도 당분간 예전의 산책로를 되찾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속상하다. 적어도 모두가 이용하고 있는 공공시설에서는 예절에 어긋나거나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이들이 줄어들기를 기대해 본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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