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용관]北 2인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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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권력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고 믿는 곳에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권력은 살아 움직이는,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든 치명적 생물체와도 같다. 권력 2인자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역린을 건드려 죽임을 당한 사례는 숱하다. 허수아비 통치자를 세워놓고 실질적 권력을 행사한 인물도 적지 않지만, 비참한 말로를 맞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주역에 ‘임금을 보필하는 건 호랑이를 동반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2인자의 가장 큰 덕목이 절대적인 충성심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 개국 초 정도전과 달리 천수를 누린 하륜처럼 말이다. 최고의 한 자리를 향한 권력 의지, 즉 발톱이 아예 없거나 이를 끝까지 숨겨야 한다. 김종필 전 총리가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을 홍곡(鴻鵠)으로 치켜세우고 자신은 연작(燕雀)으로 낮췄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되지만, 끝내 팽을 당한 것을 보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권력 2인자들의 부침이 심하다. 아니, 2인자가 있긴 했나 싶기도 하다. 장성택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조카 김정은의 집권 후 2인자 행세를 하던 장성택은 “건성건성 박수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는 등 불충에 대한 책임으로 전격 처형됐다. 이후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미 대통령이던 트럼프에게 참수된 시신을 전시해 간부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또 한번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북한이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당 총비서로 추대하면서 총비서 바로 밑에 ‘제1비서’ 직책을 신설했다고 한다. 특히 당 규약에 “제1비서는 노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라는 내용이 추가됐다는 것. 북한 노동당 규약에 ‘대리인’ 조항은 처음 등장한다. 이를 놓고 “2인자 자리를 공식화한 것이다” “‘잠재적 후계자’ 지명 근거를 마련한 것일 뿐이다” 등 갖가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성택 처형 후 확고한 권력을 구축한 김정은 체제에서 그나마 2인자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인물은 여동생 김여정이다.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상징적 수반이었고, 이 자리를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이어받았지만 역시 공식 서열 2위일 뿐이다. 백두혈통 김여정을 위한 자리라는 관측과 함께 조용원 당 조직담당 비서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조용원은 최근 김정은을 밀착 수행하며 새로운 실세로 떠올랐다. 통치 스트레스 분산용인지, 향후 정책 실패를 전가시키기 위한 희생용인지 전문가들 해석이 분분하다. 아직 공석이든, 누가 자리를 맡았든 분명한 건 그 대리인에겐 ‘신기(神技)의 처세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북한#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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