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탄식[이준식의 한시 한 수]<110>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1-05-28 03:00수정 2021-05-2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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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들 고관대작과 사귀느라 발길 뚝 끊었으니
문밖은 그야말로 참새 그물을 놓아도 될 지경.
내 진작부터 빈둥거렸지만 일하는 아이마저 더 게을러져
비 온 뒤 봄풀이 곱절이나 늘어났네.

故人通貴絶相過, 門外眞堪置雀羅. 고인통귀절상과, 문외진감치작라.
我已幽慵僮更懶, 雨來春草一番多. 아이유용동갱라, 우래춘초일번다.

- ‘한가한 생활(한거·閑居)’사마광(司馬光·1019~1086)

분주하던 친구들의 발길이 끊기자 집안은 참새 덫을 놓아도 될 만큼 적적하다. 주인이 할 일 없이 빈둥대니 손님 접대할 일이 없어진 아이조차 아예 일손을 놓아버린 모양이다. 봄비 오자 집 안팎이 잡초로 뒤덮여 어수선하다. 사마광은 정치개혁을 둘러싸고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신법파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고 그 와중에 격심한 관직의 부침을 겪었다. 그가 15년간 낙양에 은거하며 ‘자치통감(資治通鑑)’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정치적 좌절이 안긴 이런 ‘한가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내심 염량세태를 좇는 야박한 인심을 탓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바람에 생활은 오히려 더 한가해졌다고 말하는 여유 뒤에 시인의 탄식 아닌 탄식이 묻어난다. 권력 앞에 조변석개하는 이악스러운 우정에 대한 푸념 어린 자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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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그물’의 비유는 사마천이 ‘사기열전(史記列傳)’에서 소개한 한나라 적공(翟公)의 말에서 유래한다. 적공은 자신이 관직에 있을 때는 손님이 집안을 가득 메우더니 관직에서 물러나자 ‘문밖에 참새 그물을 놓아도 될 지경’이라고 개탄하면서 대문에다 글귀 하나를 써 붙였다. 사람은 죽었다 되살아나거나 가난했다 부유해지나 혹은 귀했다 천해져봐야 사귐의 정과 태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권력이나 재물을 잃으면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어진다’는 성어 ‘문전작라(門前雀羅·문앞에 참새 그물을 친다)’가 여기서 나왔다. 문전성시와 정반대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여유#탄식#문전작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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