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대통령비서실장 진공 상태다[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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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생사’가 불분명한 청와대 2인자
후임 여부 빨리 정해 국정 혼란 줄여라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향후 거취가 가장 불분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일 것이다. 수개월 전부터 정치권에서 후임에 대한 하마평이 거론됐으나 아직까지도 누가 후임으로 청와대에 들어가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다 보니 비서실장 교체 필요성은 제기됐는데 정작 바뀌는 건지 안 바뀌는 건지,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알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금까지 노 실장 후임으로 거론된 사람은 우윤근 전 주러대사, 최재성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이다. 우 전 대사는 부인의 반대가 심해 비서실장을 고사했다고 하는데 정작 대통령특사는 수락해 19일까지 러시아에 머물 예정이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문 대통령 친서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달한다고 하니 “비서실장 맡기 전 연막을 피우는 것 아니냐”며 헷갈려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 수석은 본인이 비서실장직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문 대통령 주변에선 “정무수석 후임도 마땅치 않은데…”라는, 다소 온도차가 있는 말이 들린다. 유력한 ‘마지막 비서실장’ 후보였던 양 전 원장은 여전히 손사래를 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같은 ‘부산파’의 맏형 격이자 지금은 여행업을 하고 있다는 이호철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설득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장관 하마평도 이 정도로 어지러운 적이 없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국정의 2인자 자리를 놓고 왜 이런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 인사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은 게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노 실장을 바꿀 건지, 유임시킬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언제까지만 쓰겠다는 건지에 대한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장기화되면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힘이 실리지 않고 국정 혼란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유임이 불분명하고 곧 교체될 것이라고 수개월째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에게 어떤 공직자나 청와대 직원들이 제대로 보고할까. 노 실장의 직무 역량과 무관하게 대통령비서실장직 자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각종 고위급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로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추미애-윤석열’ 갈등 처리와 내년 2차 개각 등 조율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최근 한국갤럽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진공 상태에 가까운 대통령비서실장의 흐릿한 존재감이라고 본다. 최근 노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무게감 있는 고언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정치권 인사는 거의 없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과 안일한 상황 인식이 문제라며 이를 바꾸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관성적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 바꾸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사람이 왜 스스로 임기 말에 유턴하겠나. 차라리 이보다는 대통령에게 뼈아픈 조언도 하고, ‘코로나 축구 모임’으로 논란을 일으킨 최재성 수석이나 억지성 브리핑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강민석 대변인류의 참모들을 다잡을 수 있는 비서실장을 임명하도록 촉구하는 게 그나마 약간의 변화라도 기대할 수 있다. ‘막장 국정’ 지켜보느라 피로감이 극에 달한 국민을 위해서라도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자리를 이리 방치하면 안 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비서실장직 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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