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한민국 사법부 아직 살아계시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9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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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명운을 가르는 주간이 될 것 같다.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사건 심문이 30일 월요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12월 2일 수요일엔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소집돼 있다. 징계위원장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필시 윤석열 검찰총장 중징계를 끌어낼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왜 ‘자유민주주의의 죽음’이 아니라 ‘명운을 가르는’ 주간이라고 썼느냐. 사법부의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3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가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윤석열은 직무에 복귀할 수 있다. 심문 후 며칠 내로 신청이 받아들여질지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틀 뒤에 징계위가 열리는 만큼 재판부는 당일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추미애 법무부장관.


●행정법원 조미연 판사를 주목하라
물론 윤석열이 복귀해도 추미애는 중징계를 짜낼 게 뻔하다. 하지만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추미애의 무리수와 지적 수준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통령도 추미애의 장단에 춤추기 민망할 것이다. 사법부 판단은 이렇게 중요하다. 사법부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조미연 부장판사는 엄청난 압박 속에 있을지 모른다.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의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1심 유죄를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가 어떤 곤욕을 치렀는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조 부장판사는 눈 질끈 감고 윤석열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질질 끌다 징계위 결정 뒤에 기각해버리면 부담도 덜할 터다.

그러나 그 전에 가슴에 손을 얹기 바란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윤석열 한 사람을 내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법치주의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느냐, 권력의 바람결대로 무너지느냐의 문제다. 집권당은 ‘검찰권력에 대한 문민통제’라고 주장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문민통제라니, 지금이 무슨 군사독재체제냐? ‘검찰에 대한 청와대통제’라고 솔직히 말하시라.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중국공산당처럼 사법부 영도할 텐가
집권당 박범계 의원은 최근 법원행정처 조재연 처장에게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라고 해보라며 종용을 했다. 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 예산 3000만 원이 깎인 것을 놓고서다. 판사들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몰라도 내가 다 자존심이 상했다. 설령 제 돈이라도, 설사 상대가 거지라 해도 중인환시리에 매달려 보라고 시건방을 떨어선 안 되는 일이다.

집권세력은 사법부 예산만 쥐락펴락하지 않는다. 이탄희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사법개혁’이 안 되고 있다며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이 줄줄이 무죄를 받고, 대부분 쫓겨나지도 않아 더는 못 봐주겠다는 거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법원장 인사권을 박탈한 뒤 정권의 입맛에 안 맞는 재판을 한 판사들의 법복을 벗길 의도가 역력하다.

문 정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중국 국가감찰위원회와 흡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더 흡사한 건, 중국공산당이 법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문 정권(정확히는 ‘청와대’나 ‘친문’) 역시 법 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인민민주전제정치를 고수하는 중국공산당이 행정, 입법, 사법부를 영도하듯 대한문국(大韓文國)에서도 이젠 문파가 법관 인사를 틀어쥐고 사법부까지 장악할 모양이다.



●민주주의 보루, 사법부를 응원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윤석열에 대한 추미애의 공격을 소개하며 문 대통령과 정부에 심각한 결과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력의 곁불을 쬐며 재미 보는 건 잠깐이다. 대법관들이 집권세력 앞에서 “살려주세요” 하는 시대를 맞지 않으려면 사법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성창호 부장판사가 있었다. 2심 선고 전에 김경수가 드루킹 일당의 킹크랩 시연을 본 사실이 인정된다고 못 박은 차문호 부장판사도 용감했다. 그 뒤를 이어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도 유죄를 인정한(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 함상훈 부장판사 역시 순리적 재판을 한 법관이었다.

사법부를 주시하는 것이 신종 독재와 맞서는 길이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시위도 못 하게 된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사법부라는 제도는 너무나 중요하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 법관이 됐을 조미연 부장판사가 30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 법치를 지켜주길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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