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조두순’ 막을 근본처방을[동아 시론/오윤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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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관련 각종 대책에도 불안 여전
국가가 개인 보호해준다는 신뢰 깨진 탓
피해자 각자도생하는 상황은 비정상
흉악범 합법적 격리하는 제도 필요하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코로나 블루로 힘든 요즈음 아동 성범죄자인 조두순 출소 관련 보도와 피해자 가족의 이사 소식은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연일 조두순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쏟아지고, 안산 시내 폐쇄회로(CC)TV 설치, 1 대 1 24시간 동선 모니터링, 전담 경찰 대응팀 운용, 조두순의 음주와 야간 외출금지 등 각종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관계당국은 이 정도 조치라면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범죄자 한 명에 대하여 이렇게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불안해할까? 인간에게는 안전의 욕구가 우선이다. 인간이 불안해하는 것은 생존본능이며 닥쳐올 위험에 대한 경고 시스템의 가동이다. 불안은 직접경험을 포함하여 보고 듣고 읽고 느낀 모든 것이 바탕이 된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fear of crime)도 예외는 아니다. 범죄 불안의 원인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범죄 피해자를 보며 유사한 불행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발생 가능성과 더불어 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예측 불가능성, 이로 인해 평온한 일상생활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단절 가능성, 그 과정에서 자신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상실 가능성 등이다.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었던 대상에 대한 신뢰의 부재다. 신뢰의 대상은 부모나 형제, 그 밖의 사람들, 그리고 국가일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최후의 보루는 국가다. 따라서 국가가 나를 지켜줄 거라는 기대와 신뢰가 깨지면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안산을 떠나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남긴 글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떠나는 선례를 남기기 싫었지만 여기서 살 자신이 없어 떠난다. (중략)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 국가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며, 법적으로 대안이 없다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 놓았어야 했다. 국가 공권력이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이 편지 속에 지난 세월 동안 숨죽여 살아야 했던 피해자와 그 가족의 속내가 그대로 녹아 있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느끼는 불안의 원인은 국가의 대처 과정상 드러난 문제에 기인한다. 조두순 사건을 돌이켜 보건대 법 적용을 잘못했고, 심신미약을 그대로 수용하여 감경해주었으며, 그러한 판결에도 항소를 포기했다. 이후 가해자를 영구 격리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피의자의 인권이 부각되면서 조두순 관련 법안의 입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가 2019년이 되어서야 조두순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됐다. 조두순이 피해자 근처로 돌아오는 사태를 막으려던 보호수용제 역시 입법화된다 하더라도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막혀 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가해자를 피해 시민성금으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데 가해자는 수백만 원의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부 지원 취업프로그램을 신청했다고 한다. ‘죄를 지은 자는 다리를 뻗지 못하고 잔다’는 옛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금년 초 석방된 아동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차고 재범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조두순에게 집중하면 다른 쪽에 구멍이 뚫릴 거라는 관계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사건과 같이 세인의 관심을 끄는 사안이 아닌 유사 사건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엄중한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을 것임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근본적 대책이 강구돼야 할 시점이다. 예컨대 현행법에 의하면 성범죄자의 확정 판결 이후 10년이 지나면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에도 취업할 수 있다. 조두순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듯 관련법들의 허점이 존재하고 있다.

범죄예방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현행 가중주의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각 죄에 정한 형을 합산, 병과하여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합법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병과주의의 도입을 제안한다. 그리고 실무적 측면에서는 출소 이후 흉악범 관리를 위한 보호관찰 예산과 인력 배정이 우선돼야 한다.

향후 유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안전의 욕구를 침해받으며 각자도생의 길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들의 불안은 지속될 것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의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국가를 만들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 약속을 국가는 지켜야 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조두순 사건#보호수용제#아동 성범죄자#범죄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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