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병의 월세시대, 김진애의 뉴요커처럼[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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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통’ 정치인들의 발언 논란
전문가다운 신중한 해법 아쉬워

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도시 전문가다. 그가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온다”며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게 나쁜 현상이냐’고 반문했을 때 이래서 정부·여당이 23번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전·월세 전환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 보증금의 덩치가 커 생각처럼 월세 시대가 금방 닥칠 거라고 보긴 어렵다. 문제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으로 시장이 뒤틀리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된다는 말에 계약을 끝내자고 하거나 보증금을 월세로라도 올려 받겠다는 집주인들의 요구에 밤잠을 설친 세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저금리와 소득 증가로 전세가 월세로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있다면 정치권이 굳이 전·월세 전환율까지 규제하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월세시대가 팍팍하다는 건 살아본 사람은 다 안다. 월세를 꼬박꼬박 낼 현금이 없으면 살기 팍팍한 주변부로 하염없이 밀려난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통장의 ‘현금 흐름’이 좌우할 월세시대의 도시 양극화에 우린 얼마나 준비가 돼 있나.

월세시대는 ‘신용의 시대’다. 미국 아파트 보증금은 한 달 월세 정도다. 세입자는 월세가 밀려도 보증금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집주인들은 월세의 2, 3배 이상의 월수입 증명을 요구하고 집세 공과금 연체 등의 세입자 신용 기록을 따진다. 세가 밀린 세입자와 내보내려는 집주인들의 갈등도 빈번하다. 우린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 건가. 월세시대가 온다면 시민들은 이런 걸 묻고 싶을 것이다.

월세시대엔 공공 임대주택도 중요하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 유학파 전문가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택청이 생기면 좋겠다”고 불쑥 말했다. 주택청을 만들어 주택 통계나 공공 임대주택 관리, 민간 표준 임대료 제시 등을 맡기는 법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일만 터지면 세금으로 조직부터 만들겠다고 덤비는 건 익숙하게 봐 온 일이다.

미국에서 주택청은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방만한 운영과 열악한 주거의 질로도 악명이 높다. 공공 아파트 56만 채를 관리하는 뉴욕시 주택청(NYCHA)은 최악의 ‘임대인’으로 2년 연속 선정됐다. 곰팡이가 피고 물이 새고 난방이 잘 안 된다거나 범죄, 화재를 걱정하는 민원이 쏟아진다. 시영 아파트 보수 예산만 수십조 원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공공 아파트 관리를 민영화하는 방안까지 추진되고 있다.

김 의원은 또 “차를 안 가지고 다니게만 하면 우리도 상당 부분 뉴요커가 된다”고 말했다. 고밀도 도심개발을 지지하면서 교통 문제 해법으로 뉴욕을 제시한 것이다. 맨해튼 주민이 차를 갖지 않는 건 비싼 주차비 탓도 있지만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과 페리 케이블카 우버 등 다양한 교통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지하철 편도 요금은 2.75달러(약 3200원)로 비싼 편이나 버스 지하철을 무제한 탈 수 있는 한 달 정액권은 127달러(약 15만 원)다. 지하철 청결, 막대한 대중교통 적자는 고민거리다. 서울은 24시간 지하철도 없고 한 달 정액권도 없다. 승차 공유 등 혁신적 교통 서비스 도입도 더디다. 이런 얘긴 빼놓고 뉴요커처럼 차 없이 살라고 얘기할 수 있나.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건 미국과 달리 과학과 사실에 입각한 방역 대책을 전문가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혼란과 불안을 해소하려면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 신중하고 정교한 해법을 내야 할 책임이 그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월세시대#주거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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