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임기제는 ‘김영삼-노무현법’이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0-06-24 03:00수정 2020-06-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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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눈치 보다 국민의 편에 서는 권력기관
시대를 앞서간 1988년 입법정신 훼손 안 돼
정원수 사회부장
“검찰총장의 임기제를 채택하는 것만이 검찰의 준사법적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여러 각도로 검토해서 신중히 결정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1987년 5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 야당 의원이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당시 김성기 법무부 장관은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야당 의원은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안 보고 소신껏 일한다는 사실을 내외에 과시할 생각은 없느냐”고 했지만 김 장관은 “(임기제가 없는) 현행 제도는 (1949년) 검찰청법이 제정된 이래 40년 (가까이) 시행돼 온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1년 6개월 뒤인 1988년 11월 여소야대 구도이던 제13대 국회에서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타자기체와 손 글씨가 빼곡한 20쪽 분량의 당시 법률 제출안을 보면 “검찰에 대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강력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제안 이유가 기재되어 있다. “총장 임기제를 도입해 검찰이 정치권의 풍향에 좌우되지 않고 검찰권을 법대로 행사하도록 하라”는 재야 변호사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고 한다.


정부도 태도를 바꿔 검찰총장 임기를 2년으로 하되 중임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법률안을 뒤늦게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중임을 금지하는 의원 입법안을 수정안으로 채택하기로 했다. 본회의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한 수정안은 1988년 12월 말부터 30년 넘게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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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안 발의에 누가 참여했는지 궁금해서 명단을 확인해 보니 여야 국회의원 299명 중 60명이 정파를 떠나 발의자로 참여했다. 공동 발의자 명단엔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도 있었다.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검찰총장 임기제를 도입하자고 국회에서 제안하고, 이 법안의 통과를 주도한 정치인이 21대 국회 거대 양대 정당의 상징과도 같은 두 전직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만약 법안 발의자 이름으로 법안명을 정하는 미국 의회 스타일로 법률안을 다시 명명한다면 검찰총장 임기제 법안은 ‘김영삼법’이자 ‘노무현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른바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중 경찰은 검찰에 이어 두 번째로 경찰청장 임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2월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경찰청장의 2년 임기를 보장하는 내용의 경찰청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다음 달 23일 제도 시행 이후 역대 네 번째로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기에도 임기를 지킨 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만 두 번 연속 경찰청장 임기가 보장되는 이례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민 청장을 제외하면 과거 10명의 경찰청장 중 3명만 임기제를 지켰다.

그런데 권력기관장 임기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검찰 쪽은 경찰과 사정이 정반대다. 일부 여권 인사가 지난해 7월 취임해 아직 임기가 만 1년이 안 된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기 사퇴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대표까지 나서 “앞으로는 윤 총장의 거취를 당에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진화에 나섰을 정도다.

임기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권력기관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검찰의 잘못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인 1988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요구로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취지와 배경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시대를 앞서간 그 입법정신을 유지하도록 정치권이 경쟁해야지, 앞장서 훼손하면 되겠는가.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검찰총장#김영삼-노무현법#입법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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