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6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난날 사후 생각을 농담 삼아 말했는데 오늘 아침 모든 게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소.옷은 이미 남을 주어 거의 남지 않았지만 반짇고리는 그대로 둔 채 차마 열지 못하였소. 옛정 생각에 시중들던 사람들은 각별히 챙겨주고 꿈속에선 그댈 만나 재물도 보냈다오. 누군들 이 한이 없으리오만 가난한 부부였기에 만사가 더 애통하구려. (昔日戱言身後意, 今朝都到眼前來. 衣裳已施行看盡, 針線猶存未忍開. 尙想舊情憐婢僕, 也曾因夢送錢財. 誠知此恨人人有, 貧賤夫妻百事哀.) ―‘비통한 심경을 토로하다(견비회·遣悲懷) 제2수’ (원진·元유·779∼831)

아내를 먼저 보낸 시인의 애통함을 담은 비가(슬픈 시)다. 그녀는 스물에 시집와 스물일곱에 요절했다고 한다. 죽음은 인연의 단절이기 마련이지만 반짇고리와 아내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과 꿈속의 상봉, 그리고 가난했던 시절의 온갖 애환이라는 끈질긴 고리로 얽힌 부부의 인연은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아니 시인은 그 인연을 지속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을 주고도 아직 남겨둔 옷가지와 차마 열어보지 못하는 반짇고리’가 눈앞에 아른거리니 아내의 부재가 새록새록 더 도드라졌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슬픔의 크기가 배가되는 건 가난을 벗어난 현재의 나아진 생활일 것이다. 하여 꿈속에서나마 재물을 안겨줌으로써 지난날의 궁핍에 대한 여한을 보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는 3편의 연작시 가운데 제2수. 제1수에서는 “이제 난 녹봉 십만 냥이 넘는 관리, 당신에게 제사도 올리고 공양도 드린다오”라 했고, 제3수에서는 “우리가 같이 묻힌다 한들 다 무슨 소용, 내세의 인연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걸”이라 했다. 아내를 추념하는 시를 유달리 많이 남겼던 원진, “고금에 애도시가 넘쳐나지만 이 3편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는 평가까지 얻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비가(슬픈 시)#연작시#애도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