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에 훈련과 교육보다 중요한 게 뭔가[동아 시론/홍규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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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사고 나면 온 세상이 비판 일색
‘윗선’ 심기 살피는 관리형 군대로 전락
징계위주 대응으론 사고 재발 못 막아
기초훈련 정신교육으로 팀워크 키워야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군이 연일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과거 군은 베일 속에 감춰진 집단으로 철저히 민간 세상의 관심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유리어항처럼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를 ‘투명유리 효과’라고 한다. 둘째, 청와대의 지침을 먼저 살피고, 알아서 대처하는 습성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윗선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행동이다.

군대 내 사고가 뉴스를 타면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온 세상이 군을 비판한다. 혹자는 군대 민주화 시도를 전면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섣부른 자유가 엄정한 군기를 무너뜨리고 있으니 휴대전화를 수거하고 영창제도를 다시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군의 주축을 이루는 세대가 과거와 다르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밀레니얼 Z세대’는 기존의 권위와 연공서열에 순응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고 경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고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이 통하지 않는데 4주 기본 교육으로 내 아이가 달라지기 쉽지 않다.

누구의 책임인가? 군이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을 야단치지만 우리 모두의 책임도 적지 않다. 온 세상이 군을 비판하면 장관과 각 군 총장부터 부대 책임자들까지 전원 ‘관리 모드’로 돌입한다. 아마 매일 화상회의를 통해 지휘관들에게 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관리형 군대는 이렇게 고착화된다.

싸워서 이기는 강한 군대, 완벽한 전투 준비 태세를 강조하지만 군은 어느새 사고 방지 위주로 길들여지고 있다. 아들이 군에 입대하면 부모들이 훈련소에 있는 병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소대장들은 어머니와 통화를 연결해주는 일이 주 업무인 교육 훈련보다 많아지는 게 현실이다. 과거 지뢰 작업에 투입하기 전 일선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부모 동의서를 받게 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의 지나친 아들 사랑이 군 본연의 임무를 방해하고 있다. 군의 하극상, 경계 실패, 코로나 방역 지침을 어긴 이탈자들의 출현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대응책이 늘 지휘관 문책이나 징계에 그친다면 결국 다음 사고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해법은 간단하다. 첫째,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현 국방개혁 2.0에는 훈련에 대한 가치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장병들이 강한 훈련을 통해 단결하고 팀워크를 확인할 때, 비로소 군인다운 리더십이 생긴다. 미국은 기초 훈련만 3개월을 한다. 부족한 부분은 추가 훈련을 통해서 기본기를 확보해준다. 우리는 4주도 간신히 진행할 뿐이다. 군 기강 해이는 강한 훈련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둘째, 민주시민 교육이다. 병사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 군대는 절대 강군이 될 수 없다. 조국을 지킨다는 각오와 긍지는 스스로 책임과 임무를 다하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만 때우고 나오면 되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게 본질이다. 국방개혁 2.0을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완벽한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출 여건을 만들기 위함이다. 최첨단 전력을 확보하고, 장비를 개선하고, 군인의 봉급을 올려주는 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수많은 전쟁사를 통해 역사는 각종 첨단 장비가 정신력을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훈련의 강도와 실전 능력 배양이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독일은 실제 싸우는 전투요원만 실병력으로 간주하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 위탁을 하고 있다. 군인이 전투력에만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현 정부 들어 국방부가 교육정책국장 직위를 없앴다. 정신력이나 군의 훈련은 기본 임무인데 이를 강조하는 것은 과거시대의 가치로 판단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의 역할이다. 우리 군이 비무장지대(DMZ)에서 적이 조준사격을 했을 수 있음에도 우발적이라는 해석을 하게 만든 것은 군의 자세를 탓하기에 앞서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군이 작전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게 지휘부의 역할이다. 인권 존중과 양성 평등, 군의 복지가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하지만 군이 강력한 전투 의지와 팀워크를 살릴 수 있도록 개혁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군대#국방부#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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