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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빌 게이츠의 펀드가 한국에 투자한 이유[광화문에서/우경임]

입력 2020-04-21 03:00업데이트 2020-04-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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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이 코로나19 대응을 논의한 통화 가운데 생소한 이름이 언급됐다. 바로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Research Investment for Global Health Technology)의 머리글자를 딴 ‘라이트(RIGHT)펀드’. 저개발국 감염병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한국 보건복지부(250억 원)와 바이오기업(125억 원), 빌앤드멀린다재단(125억 원)이 공동 투자한 민관 협력 기금으로 2018년 7월 출범했다. 현재 국내 5개 기업이 이 펀드의 지원으로 연구 중이다.

왜 라이트펀드는 글로벌 제약사를 가진 바이오 강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을까. 김윤빈 라이트펀드 대표는 한국 기업의 약점으로 평가됐던 추격자(Fast follower) 모델이 오히려 강점으로 통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산업은 추격자 모델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천 기술과 거대 자본이 필요한 신약 개발 대신 제네릭(복제약)과 제형 및 용법을 달리한 개량 신약에 집중했다. 김 대표는 “한국 기업이 후발 주자로서 개발한 기술이 저개발국 백신 지원에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

저개발국은 백신을 구매할 경제력이 없다. 의료진은 부족하고 유통시설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바이오기업은 효율적인 생산 공정으로 약의 단가를 낮추거나 간단한 투약이 가능하도록 개선한 약, 유통 기한을 늘린 약을 만드는 데 경쟁력이 있다. 저개발국에 보급할 백신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김 대표는 “이미 개발된 약이 있어도 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술도 신약 개발만큼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선도자(First mover)를 따라가는 과정에서도 혁신은 생겨나는 것이었다.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도 그 이유였다. 코로나19 사태에서 ICT와 결합한 진단검사는 정확하고 신속했다. ICT는 슈퍼 전파자를 찾아내는 등 역학조사에도 활용됐다. 라이트펀드는 한국 ICT와 의료기술이 접목되면 저개발국의 감염병 환자 발생 추이를 예측하고, 맞춤형 약을 추천하는 등 효과적인 공중보건 플랫폼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대부분 민관 협력으로 움직인다. 가난한 나라는 공공과 민간의 자본을 모아 될성부른 떡잎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경제 개발을 했는데 아예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빛과 그늘이 있는 방식이지만 감염병 연구에는 정석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한국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민관 합동 범정부 지원단을 구성했다. 김 대표는 “감염병 연구에 대한 투자는 보험 들기와 같아 정부와 민간 기업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민간은 감염병 유행이 끝나면 물거품이 될 백신 개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망설인다. 차 사고가 나지 않아도 보험료를 붓는 것처럼 혹시 모를 막대한 피해를 대비해 정부가 보험료를 내줘야 기업의 리스크가 줄어든다.

김 대표가 언급한 추격자의 빠른 적응력, ICT 경쟁력, 민관 협력 시스템 등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서도 통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똑같은 성공 법칙이 통할지, 뉴노멀 위기에서 변칙이 통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을 경험하기 이전과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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