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5년 생존 100만 명[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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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로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1981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뒤 상당 기간 백약이 무효여서 ‘치료제도 없는 질병’으로 불렸다. 하지만 에이즈는 처음 등장할 때의 공포에 비해선 그 후 위세가 수그러들었고, 현대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의 위치는 변함없이 ‘암(癌)’이 차지하고 있다. 에이즈는 아프리카 원숭이에서 유래된 바이러스(HIV1, HIV2)를 차단하거나 물리치는 방법으로 대처하지만, 암은 맞서서 싸울 적의 실체도 모르고 동원할 무기도 없기 때문이다.

▷암은 정상 세포가 이상 증식하고 퍼져 나간다. 10∼15%는 유전이라지만 나머지는 원인 불명으로 주모자도 없이 반란이 일어나 (세포 증식) 지휘 계통이 망가진 것이다.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는 것은 유전자(DNA) 차원의 ‘신호전달 체계’ 이상이라는 점은 밝혀졌지만 최초에 왜 이상이 생기는지는 ‘unknown(확인 안 됨)’이 더 많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 집계 결과 국내에서 암 진단 후 5년 생존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숙적 암과의 투쟁에서 우보(牛步)지만 진전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암 환자 5년 상대생존율’은 70.4%로 10년 전의 54.1%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상대생존율’은 같은 성(性)과 연령에서 암에 걸리지 않은 일반인과 비교해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생존율을 나타낸다. 전립샘암과 유방암은 각각 94%와 93%로 암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5년 후 살아있을 비율이 조금 떨어질 뿐이다. 갑상샘암의 상대생존율은 100.1%다. 갑상샘암 진단을 받은 후 식습관 개선 등 노력 덕분에 5년 후 살아있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오히려 0.1%포인트 높은 것이다(연세대 의대 박은철 교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염병이나 세균 질환이 암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지만 인류가 거의 극복했다. 암은 기원전 16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의료 문서인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에도 48가지 증상 중 하나로 언급된다. ‘Cancer’란 단어는 히포크라테스가 종양의 모습이 게(crab) 등딱지 같다며 게를 뜻하는 그리스어 ‘카르키노스(Karkinos)’를 사용해 묘사한 데서 유래됐다. 암은 아마도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시달려온 질병이면서도 여전히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지 못한 난적이다. 그럼에도 조기 진단과 수술을 통한 제거, 흡연 비만 동물성 단백질 섭취 등 위험 요소 관리를 통해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불치병이라는 지긋지긋한 수식어가 암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그날을 고대해본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에이즈#암#상대생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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