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뉴스룸]예쁜 레이저, 심리스 아이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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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산업부 기자
김현수 산업부 기자
10년 전 6월 29일, 미국에 아이폰이 나왔다는 뉴스를 봤다. 그땐 별 관심이 없었다. 모토로라의 핑크색 레이저 모델이 더 예뻐 보였으니까. 당시 레이저는 날렵한 디자인과 핑크, 라임, 실버, 블랙 등 다채로운 컬러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아이폰이 마음에 들어온 것은 ‘옐프(yelp)’라는 맛집 찾기 애플리케이션(앱) 때문이었다. 2009년 9월 미국 뉴욕에 갔을 때였다. 주섬주섬 지도책을 꺼내려던 찰나, 미국에 살던 지인이 아이폰을 꺼냈다. 옐프로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인기 있는 컵케이크 카페를 찾아냈다. 여행 책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이폰은 그해 11월이 돼서야 한국에 상륙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망설이던 중 친구가 미국 주간지 ‘타임’ 앱 덕분에 출퇴근 시간에 영어공부 하기 좋다고 했다. 공부는 ‘지름신’의 좋은 핑계가 돼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폰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구구절절 아이폰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29일이 아이폰의 10번째 생일이어서, 두 번째는 얼마 전 열린 동아일보, 한국디자인진흥원 주최의 디자인경영포럼에서 아이폰이 화제에 올라서다.

포럼에 참석한 에린 조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전략디자인경영학과 교수는 “아이폰은 디자인이 아닌 전략의 승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 왜 10년이 넘도록 아이폰이 디자인경영의 모범 사례로 꼽힐까. 조 교수는 “아이폰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혁신을 이끄는 ‘디자인 전략’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10년 전 레이저는 예뻤고, 블랙베리는 시크했다. 하지만 아이폰은 휴대전화에 맛집 검색, 영어공부 같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더 많은 개발자가 뛰어들면서 그 쓰임새는 무한히 확장됐다. 이젠 백화점, 서점, 은행도 들어 있다. 아이폰 이후의 디자인경영은 ‘남보다 예쁘게 만들어서 비싸게 판다’가 아닌 ‘새로운 기술과 의미를 제품과 서비스에 매끄럽게 담을 수 있는가’를 포괄하는 전략적 개념이 됐다.

요즘 ‘심리스(seamless·끊김 없는)’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품과 서비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포스트 아이폰 시대에는 기업이 각종 ‘재료’를 심리스하게 융합해 디자인해야 한다.

혁신적인 기업들은 이미 디자인, 개발, 전략, 기획부서가 함께 심리스한 상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는 디자이너를 ‘서비스 설계자’로 부른다. 사용자의 경험까지 디자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세 명 중 두 명은 디자이너 출신이다. 이 회사의 디자인 팀에는 도서관 사서, 댄서, 생명보험 설계사 출신 등이 있다고 한다. 사용자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배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고향, 미국에서는 최근 10주년을 기념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10년 후 당신의 아이폰은 더 이상 폰이 아닐 것.’ 안경이나 헤드셋, 혹은 상상도 못 할 디자인이 나타날지 모른다. 무엇이 또 우리의 10년을 바꿀지 기대된다.
 
김현수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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