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 미국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이 전시장에서의 셀카봉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작품과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박물관 측은 설명한다. 긴 셀카봉이 전시물을 파손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람까지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찬반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적절한 조치가 아닐까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우리만
셀카봉에 열광하는 줄 알았는데 미국인들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요즘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늘 셀카봉이 있다. 부산의 국제시장 꽃분이네 가게 앞에도, 서울의 북촌 서촌 인사동에도, 박물관 미술관에도 여기저기 셀카봉이 솟구쳐 오른다.
무엇 하나 인기를 끌면 폭발하듯 대세를 장악해버리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네 최근 풍조다. 유행의 전파 속도는 매우 빠르다.
국제시장 꽃분이네가 인기 코스로 부상해 많은 이들이 그 앞 포토존에서 열심히 셀카봉을 들어올리는 것도, 사람들이 몰리자 건물주가
임대료 올려달라고 해서 가게 주인이 장사를 접어야 할 뻔했던 것도,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가게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러자
이번엔 그 옆집 가게 주인이 자리를 비워 주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까지.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반전이 모두 순식간에 벌어졌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은 으레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서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서촌을 두고 근대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 명분으로 서촌을 찾는다. 인왕산으로 오르는 서촌의 골목골목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셀카봉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런데 문화는 보이지 않고 카페와 음식점, 무언가를 사고파는 사람들만 보인다. 인왕산 자락에 모여들었던
조선시대 예인들의 흔적, 근대기 문화예술인들의 고뇌의 숨결을 찾아볼 기회는 거의 없다. 누군가는 “서촌은 망가졌다. 그것도 불과
1년 사이에”라고 한탄한다. 문화가 있다면 먹고 마시는 문화일 뿐. 인근에 있는 삼청동 가회동의 북촌도 그렇다.
서촌과 북촌 일대는 지겨울 정도로 골목까지 카페가 파고들고 있다. 며칠에 하나씩 주택 담장이 헐리고 멋진 카페가 문을 연다.
곧이어 사람들이 몰려와 차를 마시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카페가 득세하면서 임대료는 올라가고 돈이 부족한 원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있다. 객이 와서 주인을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지나친 관심, 지나친 관광이 국제시장 꽃분이네를 위기에 빠뜨렸고 북촌과 서촌의
원주민들을 떠나가게 한다는 역설. 안타깝게도 엄연한 현실이다.
셀카봉은 분명 매력적인 물건이다. 나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한쪽 팔을 쭉 뻗어 아득바득 나를 찍다 보면 내 모습이
왜곡되기 일쑤다. 하지만 셀카봉을 이용하면, 좀 더 먼 거리에서 안정적 객관적으로 나를 보게 만들어준다. 동시에 주변 배경까지
담아낼 수 있다.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내 얼굴만 찍을 것이 아니라, 좀 더 먼
거리에서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가 서 있는 그곳의 배경과 무대,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나 혼자가
아닌, 배경과 함께할 때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