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임수]‘명량’과 창조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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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기자
정임수 경제부 기자
영화 ‘명량’이 최근 1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사(史)를 새로 쓰고 있다. 개봉 당일부터 신기록 행진을 이어오더니 한국 영화 최초로 매출액도 1000억 원을 훌쩍 넘겼다. 흥행 대박에 영화 투자·배급·제작사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됐다. 명량 흥행의 수혜자 중에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도 있다.

두 은행은 펀드 투자를 통해 명량의 제작비를 댄 투자자다. 산업은행은 사모펀드에 300억 원을 출자해 명량에 17억5000만 원을, 기업은행도 사모펀드에 100억 원을 출자해 5억 원을 댔다. 두 사모펀드는 CJ E&M이 제작하는 모든 영화에 투자해 흥행에 따른 수익을 올린다. 명량 투자만 놓고 볼 때 두 은행은 벌써 80%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돈 벌기가 쉽지 않은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우리도 진작 이런 데 투자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안타깝게도 은행권에서 영화나 드라마, 공연 등 문화콘텐츠에 투자하는 곳은 현재 산업, 기업은행뿐이다. 시중은행들은 오래전부터 투자를 검토한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문화콘텐츠 산업은 5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필요한 데다 리스크와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다. 흥행할 만한 영화와 드라마를 제대로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산업은행도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만 하고 있다. 콘텐츠 투자 전담부서를 만든 기업은행이 유일하게 직접투자에 나서 영화 ‘역린’과 ‘군도’에 제작비를 댔다.

“문화콘텐츠는 10개 작품에 투자하면 성공한 2개가 수익을 이끌어가는 구조다. 정보도 별로 없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신용등급, 재무제표 같은 데이터만 입력하면 대출한도 등이 결정되는 제조업과는 천지차이다.”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정성희 팀장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우선시하고 단기투자와 제조업 중심 시스템에 익숙한 은행들이 문화콘텐츠 투자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은행들은 우수한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돕겠다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 농협 하나 우리 신한은행 등이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까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창업·벤처기업 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연이어 ‘금융권 보신주의’를 질타하며 창조금융, 기술금융 활성화를 주문하자 이런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정부 입맛에 맞춘 ‘보여주기 식’ 대책을 쏟아낸다고 비판한다. 무리하게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은행들이 오히려 이번 기회를 유망 벤처·중소기업을 발굴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정부의 강요에 못 이겨 기존 거래 기업에 기술금융 껍데기만 씌워 실적을 채우지 말고 발품을 팔고 공을 들여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기업을 찾아내길 바란다. 그래야 제2의 ‘명량 대박’도 터뜨릴 수 있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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