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원제무]‘여백의 미학’이 있는 도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오래된 한옥마을에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볼 때나 포근하고 친밀한 느낌을 주는 골목길에 빠져들었을 때 애틋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우리 도시에는 이처럼 일상생활에 지친 영혼을 쉬게 해주는 장소를 쉽게 찾기가 힘들다.

볼품없는 거리, 문 닫힌 전통시장, 지저분한 골목길, 무미건조한 상가 건물, 낙후된 주택가, 디자인 없는 공공시설물 등 우리 옛날 도심은 더 이상 구도심으로서의 역사, 경관, 문화를 지니지 않는다. 성장의 그늘에서 우리 고유의 옛 공간들은 차츰 사라지고 새로운 국적 불명의 도시 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이나 문화가 있는 외국 도시들을 가보면 도시의 주요 공간을 잘 창조했고, 그 공간들을 제대로 보존했던 정신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도시를 보며 감동을 받는 것은 그 도시에는 격이 있고 그 속에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논과 밭 산야들은 개발 과정에서 파헤쳐지거나 잘려나갔다. 그곳에 인공공원, 인공호수, 인공녹지가 들어섰다. 신도시나 시가지로 개발된 장소에는 오래전부터 숲도 있었고, 실개천도 흘렀었다. 한갓진 오솔길도 있었다. 도시와 자연을 연결해야 하는 탯줄이라는 인간생태계가 파괴된 도시의 모습이 주변에 널려 있다. 도시 내에서 만날 수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연의 빛깔과 표정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도시는 서서히 볼품이 없어지게 되고, 그 도시 안에 인본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백이 없으면 도시민들이 숨이 막혀 못 산다. 자동차 중심대로가 도시 공간 대부분을 잠식한 지 오래되었고, 인도는 좁은 공간에다 걷기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마천루 도시 모습으로 변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까이 하는 도시 공원이나 수변공간만 해도 그렇다. 놀이기구, 스포츠시설, 주차장 등 너무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여백의 공간은 빈 공간으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도시도 여백의 미학에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 도시 공간에서도 채워진 공간과 채워지지 않은 공간의 관계 속에서 여백의 공간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용산의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기지 터 230여만 m²(약 70만 평)가 우리한테로 굴러 들어온다. 이 공간을 녹지와 공원으로 비워 놓게 되면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와 같은 커다란 도심공원이 서울에도 생겨나게 된다. 미군이 이 장소를 비우게 되면 이러한 비움의 철학을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도시에는 도시민의 마음을 살리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도처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도시도 전통, 복원, 비움, 자연, 생태, 재생 속에서 도시적 삶의 깊은 의미를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원제무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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