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상회담 실언 감추는 데 쓰인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공방이 1년째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느냐를 놓고 지난해 10월 대선 과정에서 폭로가 시작됐다. 국가기록원에 당연히 있어야 할 대화록은 없었다. 이제는 대화록 초안(1차 완성본)과 최종본의 차이를 놓고 정반대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봉하마을로 무단 반출한 이지원(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 사본에서 삭제된 대화록 초안을 발견해 복구했다고 밝혔다. 이 초안은 올해 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대화록 최종본과 ‘의미 있는 차이’가 있고 초안이 오히려 완성본에 가깝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화록이 왜 국가기록원에 존재하지 않는지 추론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수정을 지시했고, 언젠가 이뤄질 대화록 공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싶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서 대화록과 관련해 “(나한테) 안 좋은 이야기, 불리한 거는 지정물로 묶자”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런 발언이 담긴 동영상을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그로부터 15년 동안 열람할 수 없다. 국가 기밀을 보호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를 감추는 데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이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기득권을 공격할 때 당당하던 모습과는 다른 노 전 대통령의 이중성이다.

노무현재단의 김경수 봉하사업본부장의 해명은 노 정부의 기록물 관리 및 인계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초안은 표제만 삭제된 채 내용이 그대로 보관돼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복구한 게 아니라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초안과 최종본은 오류를 바로잡은 것일 뿐 큰 차이가 없어 중복 문서로 분류해 초안을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종본마저 왜 국가기록원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김 본부장은 초안을 공개해 최종본과 비교해 보자고 했다.

노무현재단도 초안 공개를 찬성하는데 검찰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초안과 최종본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 노무현재단 측 주장이 맞는지 금방 판가름이 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노무현#국가기록원#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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