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개츠비 곡선과 불평등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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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이렇게 시작한다. 상류층 출신 화자(話者)인 닉 캐러웨이에게 아버지가 해준 충고다. 대저택에서 밤마다 호화파티를 여는 옆집 남자 제이 개츠비는 젊은 날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다. 그 여자, 데이지는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지닌 속물 아니 요물이었는데도.

▷소설 속 개츠비가 살았던 1920년대는 밀주(密酒)와 재즈가 흐르는 풍요의 시대였다. 대공황 직전엔 소득 상위 1%의 가계소득이 미국 전체의 21.09%를 차지할 만큼 빈부 격차가 극심했다. ‘개츠비 곡선’이란 경제적 불평등이 심할수록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의미로 지난해 미국의 경제자문위원회 앨런 크루거 위원장이 소개했다. 덴마크 노르웨이처럼 지니계수가 낮은 나라에선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나도 노력과 능력에 따라 계층이동이 가능하지만 미국은 지니계수가 높아 개츠비 탄생이 불가능해졌다는 거다.

▷내일모레면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5년이다. 탐욕의 월가는 막대한 공적 자금 덕에 되살아났다. 상위 1%의 소득은 22.2%로 금융위기 전보다 되레 늘었다. 미 국세청 자료를 토대로 미국의 빈부 격차를 분석한 결과, 가계소득 비율 분석이 시작된 1917년 이후 최대치 격차다.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0.3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8위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덜 불평등한 수치지만 우리 삶에서는 통계보다 ‘인식’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응답이 국민 4명 중 3명꼴이었다. 내 자식이 나보다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만 부모는 등골 빠지게 일해도 힘든 줄 모른다. 부잣집 아기들 무상 보육할 세금으로 취약계층에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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