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길영]제복에 대한 예우가 나라의 품격을 결정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길영 KBS 이사장
이길영 KBS 이사장
개인적인 일로 최근 미국을 다녀왔다. 항상 테러의 위협에 노출된 국가답게 공항의 출입국 수속 절차는 불편함을 넘어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한국과의 시차 탓에 밤늦게 일을 하고 있는데 내 숙소 주변을 수시로 순찰하는 미국 경찰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든든하다는 느낌보다는 이방인으로서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살짝 불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변함없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소위 제복 입은 사람들(MIU·Men in Uniform)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예우였다. 귀국 직후인 5월 말 워싱턴에서 고속도로 순찰 중 순직한 경찰관을 기리는 엄숙한 추모식 사진을 신문에서 봤다. 순직 경찰관을 위해 전 관공서가 조기를 게양했다던 2010년 메릴랜드 주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덕분인지 미국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소방관, 7위는 경찰관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오죽하면 우리나라 법질서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 하겠는가. 이런 현실에서 공권력을 상징하는 제복 입은 사람들의 권위가 바로 서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과욕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공권력이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조롱받는 데는 스스로 제복의 권위를 훼손시켜 온 일부 공직자들의 탓도 크다. 한때 나라를 지킨다는 이유로 군(軍)이 하는 모든 일에 인내를 강요받은 탓에 제복에 저항하는 것 자체가 마치 약자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노력으로 포장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영영 ‘존경 받는 제복, 권위가 살아 있는 공권력’을 갖지 못하는 불행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가 2011년 시작한 ‘영예로운 제복상’과 ‘제복이 존경받는 사회’ 기획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제는 이벤트성 시상식을 넘어 우리 사회가 이들을 영원히 기리는 추모관 건립에도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부국이나 군사대국 이전에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예측 가능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선진국일수록 공권력의 권위가 살아있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복 입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야말로 한 나라의 법질서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물론 공권력 스스로 더 많은 자기반성과 개혁 노력이 시급하다.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하고 제복의 권위와 명예를 스스로 갉아먹는 부적절한 구성원들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더이상 정권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를 최고의 명령권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도 제복의 가치를 깨닫고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 정부가 추구하는 국민행복시대의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이길영 KBS 이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