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장 임기 불명확하면 헌재 독립성 흔들린다

  • 동아일보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를 임명 시점부터 6년으로 하고 법원 판결도 헌법 소원의 청구 대상으로 삼자는 헌법재판소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헌법은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고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한철 현 소장 이전까지 모든 소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됨과 동시에 소장 직을 맡았기 때문에 임기 6년이 보장됐다. 그러나 박 소장은 재판관에서 곧바로 소장이 된 첫 사례여서 재판관 잔여 임기 동안만 소장 직을 수행해야 하는지, 6년을 다 채워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박 소장의 재판관 잔여 임기는 2017년 1월 말까지다. 박 소장이 이때 소장 직을 그만둔다면 박 대통령은 한 번 더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소장의 임기를 소장 직 수행 때부터 따져 2019년 3월까지로 한다면 헌법재판소장 임명권은 차기 대통령의 몫이 된다. 박 소장은 자신의 임기를 2017년 1월 말까지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라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장 임기가 불명확하면 헌재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전효숙 당시 헌법재판관을 소장에 임명하기 위해 재판관 직을 사임하게 했다. 6년의 소장 임기를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 규정까지는 고려하지 못하고 새로 재판관 임명 절차를 밟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코드 인사’라는 비난에 휩싸였던 전 재판관은 이 문제로 결국 낙마했다.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를 분명히 해 분란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교훈을 준 사례다.

법원 판결도 헌법소원 청구 대상으로 삼아 이른바 ‘재판 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헌재의 주장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법원은 재판 소원을 허용하면 사법체계가 사실상 ‘4심제’로 바뀐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헌재는 몇몇 기업체가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 제기한 헌법 소원을 받아들였고 대법원은 이 기업체들이 헌재의 결정을 근거로 낸 재심 청구에 대해 다시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두 기관이 갈등을 빚어왔다. 공권력 사이의 충돌로 국민이나 기업이 피해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판 소원 허용 여부는 헌재와 상대방인 대법원, 그리고 학계의 중립적인 의견 등을 폭넓게 청취해 국회가 결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장#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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