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윤창중, 백악관 대변인 흉내라도 내봐라

  • 동아일보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매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30분∼1시간 정도 브리핑을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장 중에도 거르지 않는다. 대변인은 대통령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도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이 끈질기게 물어보기 때문에 알맹이 없는 답변은 용납되지 않는다. 브리핑룸에서는 모든 기자를 똑같이 대우해 주지 않는다. 출입기자들의 자리는 매체의 영향력 순서대로 정해져 있고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과 시청률이 높은 TV에 우선적으로 질문권을 준다. 대변인은 모두(冒頭)에 발언을 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한다. 브리핑룸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이 감돌기 마련이다.

백악관 브리핑에선 온갖 국정 현안을 다 논의한다. 출입기자들은 궁금한 것을 대변인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대변인은 잘 모르는 내용이 나올 경우 “확인해서 다음 브리핑 때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출입기자들은 백악관 브리핑에만 참석해도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고 대통령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브리핑이 끝난 뒤엔 백악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질의응답을 비디오 영상과 함께 올려 국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기자들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려면 대변인은 거의 모든 정책을 속속들이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의 속내까지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대변인이 평소에 공부하지 않으면 밑천이 드러나기 때문에 기자들의 호된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웬만한 내공 없이는 대변인 자리를 버텨내기가 쉽지 않은 게 미국의 개방형 브리핑 시스템이다.

백악관뿐 아니라 국무부와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매일 세계의 외교정책을 논하는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점심시간 때인 낮 12시부터 미국 기자들과 외신 기자들이 섞여 있는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기자들과 만난다. 예민한 사안은 공식 브리핑이 끝난 뒤에 마이크를 끈 다음 연단에서 내려와 기자들의 질문에 백그라운드 브리핑(배경 설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그제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3분 동안 단 다섯 문장으로 브리핑했다. 브리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언론을 무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잘못된 행동이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은 국민에 대한 책무이다. 가장 중요한 정보 발신처의 브리핑 모습을 보고 다른 부처까지 “우리도 저렇게 해도 되겠구나” 하고 따라갈까 걱정이다.

윤 대변인의 불성실한 브리핑이 대통령의 뜻은 아닐 것이다. 비서들이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대변인이 부실 브리핑을 계속할 경우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박 대통령과 국민이다. 대변인이 대통령의 충실한 메신저 역할을 못하면 좋은 국정도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윤 대변인은 백악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카니 대변인이 어떻게 브리핑하는지 보고 흉내라도 내기 바란다.
#윤창중#백악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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