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강행한 탈북자 단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비판해야 할 대상이 전도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탈북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우리의 안보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도발을 남발하는 북한 정권이지 대북 전단 살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임진각에 공격을 퍼붓는다면 그것은 대북 전단 살포 때문이 아니다. 대북 전단 살포는 그럴싸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혹자는 북한에 명분을 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정말 명분이 필요하다면 대북 전단이 아니고도 명분을 찾아내지 않겠는가? 이전에도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도발을 천명했지만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 이는 북한의 도발에 명분의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북한은 명분이 있든 없든 필요에 따라 행동한다. 연평도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은 사전 경고 없이 행해졌다.
‘북풍’은 남한의 대선에 매우 중요한 안보 변수다. 아직 권력 확립의 과정에 있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남한에 진보정권보다는 보수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선호할 개연성이 높다.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다. 따라서 북한의 권력을 공고화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장기 플랜으로, 북한이 이번 같은 도발 경고를 통해 대선 개입을 공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보내고자 하는 중요한 이유는 누구보다 북한을 잘 아는 탈북자들이 볼 때 북한 주민을 계몽하고 설득하는 수단으로 대북 전단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대북 전단은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의 허구성과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남한에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다. 외부 정보를 거의 접할 길이 없는 북한 주민 중엔 아직도 김정은 체제가 세계를 선도하는 훌륭한 체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최근 중국과 맞닿은 국경지대나 평양 같은 대도시는 남한 드라마가 유입되고 외부 정보를 접할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소식들이 통용되는 지역 범위가 한정돼 있고, 북한 정권 자체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체제의 기만을 알기엔 부족하다.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보내는 두 번째 이유는 대북 전단의 효과 때문이다. 북한은 철저히 김정은을 정점으로 한 지배계급의 우상화를 기반으로, 주민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체제 이탈을 방지하는 공포정치로 운영되는 집단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우상화’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북 전단의 내용은 김정은 우상화의 철저한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탈북자 자신이 북한에 있을 때 세뇌 당한 것을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어떤 것보다도 북한 주민을 잘 설득할 수 있다. 더 많은 북한 주민이 북한 체제의 기만성을 알아 갈수록 북한 정권에 대한 변화의 압력이 커진다. 실제로 탈북자 중에는 대북 전단을 보고 탈북을 결심한 사례가 많다. 북한 정권이 대북 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만 보더라도 대북 전단의 효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북 전단을 보내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꾸준히 행해 온 것이다. 일부의 비판처럼 탈북자 단체가 이를 통해 실리를 취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게 아니다. 특정 정치 세력의 사주를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탈북자 단체의 목적은 통일한국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자 남한에서 만끽하는 자유와 풍요라는 행복을 북한의 가족도 공유하는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는 것이다. 이런 탈북자들의 간절한 노력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은 이번 도발 경고에 대한 북한의 검은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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