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용민]‘암호문’ 보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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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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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 차일드케어그룹 대표
정용민 차일드케어그룹 대표
정부가 충분한 검토와 재원 마련 대책 없이 시행한 영유아 무상보육 제도를 결국 7개월여 만에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답답한 사람은 부모들이다. 지난 7개월 동안 부모들 맘이 편치 않았다. 정부나 일부 전문가는 부모들을 공짜 좋아하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굳이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아도 되는 전업주부들조차 앞다퉈 아이를 시설에 맡기면서 정작 시설 보육이 필요한 맞벌이 가정의 자녀가 시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보육 예산 고갈도 이 때문에 빚어졌다고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만 0∼2세 영유아에 대해 부모 소득에 관계없이 전면 무상보육을 도입한 것은 바로 정치권 아닌가.

즉흥적이고 땜질식으로 제도를 도입하고 뜯어고치다 보니 보육료와 양육수당 체계를 파악하는 것은 거의 ‘암호’를 파악하는 수준이다. 혜택을 받는 학부모들조차 자신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최근 동아일보가 주최한 영유아 무상보육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한 엄마는 “동사무소 직원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라는 얘기를 할 정도다.

그동안 거의 모든 대선후보와 정치권은 “아이만 낳으면 양육과 보육은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지원해준다고 국가가 아이들을 책임지고 길러준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한 명도 없다. 무차별적이고 무계획적인 무상 지원을 받는다고 마냥 반가운 것도 아니다. 정부 예산 역시 우리가 내는 세금이다. 언젠가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 아이들 보육 정책을 정치권이 때가 되면 표를 얻기 위해 국민에게 ‘퍼주는’ 시혜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국가의 진심 어린 사랑과 관심이 깔려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만 0∼2세 영유아에 대한 양육보조금 지원 대상과 금액을 부모의 소득 기준으로 하위 70%까지 대폭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명확히 말하자면 이는 지원 확대가 아니라 축소다. 만 0∼2세 영유아에 대해서는 전 계층에 지원하던 보육료를 양육보조금과 시설보육료로 구분하고, 지원 대상자는 소득 하위 70%로 줄였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30%의 가정은 앞으로 보육시설에 보내더라도 20만 원을 부담해야 하고, 가정양육을 하면 그나마 양육수당은 받을 수 없게 된다. 시설보육이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을 수 있는 맞벌이 가정이 역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 그동안 일부 전문가와 영유아 부모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부모 선택권 확대’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물론 소득 하위 70% 가정에만 해당되긴 하지만 만 3∼5세 유아에 대한 양육수당을 도입했다는 점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가정보육과 시설보육 중 부모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 10만 원으로 부모가 자녀 보육의 선택권을 갖게 됐다는 것인가. 만 3∼4세의 보육비가 만 0∼2세보다 더 들어가는데도 혜택은 덜 받는다는 구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부모들의 목소리다.

정부, 정치권, 전문가 집단 등은 앞다퉈 ‘무상보육’에 이런저런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도 정작 중요한 보육 주체인 부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선이 코앞이다. 우리 부모들은 땜질식 처방의 제도를 누가 보다 이해하기 쉽고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제도로 바꾸는지 지켜볼 것이다.

정용민 차일드케어그룹 대표
#보육정책#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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