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신과 아파트 원가 공개, 공공성에 차이가 있다

  • 동아일보

서울행정법원은 그제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휴대전화 요금의 원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해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요금 원가 산정을 위해 필요한 이동통신 서비스 내용과 요금 책정 과정의 정보를 공개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통신요금이 과연 적절하게 산정되고 있는지, 불합리한 가격 거품이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올 2분기 가구당 통신비는 월평균 15만4360원이나 됐다. 전년 동기 대비 9.3% 늘어 통계청이 조사한 12개 가계지출 항목 중 증가세가 가장 가팔랐다. 이동통신 3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8677억 원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이동통신료 인하를 추진했지만 작년에야 기본요금 1000원 인하, 문자메시지 50통 추가라는 초라한 실적을 냈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신규 고객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 고객을 뺏고 뺏기는 경쟁에 몰입해 있다. 통신사들은 3만 개가 넘는 판매점을 유지하고, 가입자들이 수시로 교체하는 전화기 보조금을 대느라 매년 수조 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을 지출한다. 이는 고스란히 휴대전화 요금에 반영돼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과도한 마케팅 거품만 빼도 통신요금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통신사들은 민간기업의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이번 판결이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일뿐더러 마케팅 자료를 공개하면 경쟁사에 영업 정보가 노출돼 사업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반발한다. 2004년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요구가 잇따르자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경제에 반하는 주장이라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 그 결과 벌고 못 벌고 하는 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맞서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 시장에서는 유효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이동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사가 과점(寡占)하고 있다. 그중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절반을 넘는다. 더욱이 아파트와 달리 통신은 온 국민의 공공재인 전파를 원자재로 사용한다. 통신사들이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시장경제 원칙만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통신비#아파트#원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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