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운선]“성범죄땐 처벌” 범인 뇌에 각인시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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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선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대구 해바라기센터 소장
정운선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전 대구 해바라기센터 소장
연이어 발생하는 아동 대상 성폭력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가 인다. 필자는 성폭력 피해 아동을 치료해 온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아동 대상 성 범죄자에 대해 뇌 과학에 근거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있다. 만 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시멜로를 당장 먹겠다고 하면 하나만 주고, 15분을 기다리면 두 개를 준다고 했다. 자신의 욕구를 참을 줄 아는 아이가 대학수학능력검사(SAT) 성적이 더 높았고 친구 및 주위 어른들과도 더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 이 실험 결과는 4세 때 지능지수(IQ) 검사수치보다도 고등학교 성적과의 연관성이 더 높았다.

척수와 몸의 주요 기능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생명의 뇌’인 뇌줄기(brain stem)의 경우 태어날 때 완성된 상태로 나오지만 ‘감정의 뇌’인 변연계(limbic system)는 아래 반쪽 정도만 발달한 상태로 태어난다. 변연계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과의 애착 관계를 통해 성숙된다. 이게 잘 성숙돼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 공감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출생 당시 가장 미숙한 대뇌 겉질, 즉 전두엽은 ‘이성의 뇌’인데, 20대 중반이 되어야 발달이 얼추 끝난다.

이성의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절제 능력으로, 마시멜로를 하나 더 먹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도록 조절한다. ‘이성의 뇌’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데 3세까지, 그중에서도 생후 1년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 방치되거나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감정의 뇌’에 손상이 오고 ‘이성의 뇌’와의 연결도 시원찮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억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린 아동의 신체를 이용하는 성범죄자의 뇌가 그런 상태다.

범죄자들의 어린 시절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어릴 적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아동 성범죄자들의 절반 정도가 어린 시절 성범죄 피해자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다른 아이들의 뇌 발달을 저해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동 성범죄 가해자들이 조절력을 상실한 부분에 대해 사회 전체가 ‘이성의 뇌’ 기능을 해 주어야 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들의 뇌에 인식시켜야 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최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전 국민적 합의를 통해, ‘반드시’ 가해자를 잡아서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잡힌 사람만 억울한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면 다 잡힐 테니 그게 두려워서라도 안 하게 해야 한다. 처벌이 무섭다는 것을 계속 뇌에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 성범죄자는 평생 평균 20∼150명의 피해 아동에게 범죄를 저지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 사람을 잡으면 아동 수십 명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성욕 자체에 초점을 맞춘 치료보다는 조절력, 통제력을 증가시키는 약물 치료나 인지 행동 치료가 효과적일 수 있다. 피해자의 감정에 공감하도록 하는 치료를 한 후 재범률이 줄었다는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성폭력의 피해를 입은 아동은 반드시 심리 치료를 해서 뇌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가해자가 청소년인 경우 억제하고 조절하는 ‘이성의 뇌’가 미처 다 발달되기 전이므로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를 입은 적은 없는지 살펴보고 ‘이성의 뇌’가 다시 발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정운선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대구 해바라기센터 소장
#정운선#시론#아동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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