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용석]디자인 특허 소홀했다가… 값비싼 수업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9일 03시 00분


2007년 초 한 달 차이로 공개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F700’(왼쪽)과 애플의 아이폰. 동아일보DB
2007년 초 한 달 차이로 공개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F700’(왼쪽)과 애플의 아이폰. 동아일보DB
“애플 제품은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합니다. 중국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혁신의 엄청난 가치는 모두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그게 바로 지식재산권의 힘이죠.”

몇 년 전 미국에서 만난 특허 전문회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의 중심이 중국으로 넘어가더라도 돈은 미국이 벌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 수단은 다름 아닌 특허라고 했다.

애플은 자사의 아이폰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활짝 열었지만 뒤쫓아 온 삼성전자, HTC 등이 덩달아 돈을 벌자 특허를 소재로 ‘청구서’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첫 상대는 ‘제일 잘나가는’ 삼성전자로 결정됐다. 24일(현지 시간) 미국 기업인 애플과 시민(배심원)이 합작해 삼성전자에 보낸 이 청구서에는 ‘1조1900억 원’이라는 거액이 찍혀 있었다.

이들이 몇 년에 걸쳐 청구서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일류를 자부한 우리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난 주말 인터넷에선 둥근 모서리, 하단의 심플한 버튼까지 아이폰과 꼭 닮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F700’이 화제였다. 이 제품이 공개된 시기는 2007년 2월. 아이폰보다 한 달 늦긴 했지만 통상 디자인에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폰을 베꼈다고 보기는 불가능했다. 누리꾼들은 “아이폰 디자인이 독창적이라고 하더니…”라며 흥분했다.

삼성전자는 F700을 예로 들며 아이폰 디자인이 애플만의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먹히지 않았다.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애플이 아이폰 디자인 특허를 등록하기 전에 조금만 서둘렀다면 지금의 대형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와인 잔을 본뜬 디자인으로 세계 TV시장을 휩쓸었던 삼성전자의 보르도TV도 비슷한 운명이었다. 중국과 일본 업체가 버젓이 보르도TV를 베꼈지만 특허가 없어 소송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김용석 산업부 기자
김용석 산업부 기자
물론 특허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벤치마킹하며 혁신을 거듭하는 시장에서 특허가 혁신을 막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유행에 따라 바뀌는 디자인을 특허로 보호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제조업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대신 지식재산권을 많이 쥐고 있는 미국의 법원이 자국에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사실로 확인됐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번에 날아온 1조1900억 원의 청구서가 소중한 수업료가 되기를 바란다.

김용석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기자의 눈#삼성#애플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