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21>화려한 드라마로 포장되는 ‘성공 스토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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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등장할 때마다 아들의 ‘연예인 병’이 깊어졌다.

“노래든 연기든 나도 저만큼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연기학원 좀 보내줘.”

아내 또한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거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밀어주자. 혹시 알아? 쟤가 수백억 원짜리 ‘걸어 다니는 기업’이 될지?”

어설픈 아이돌에 비하면 우리 아들이 훨씬 낫다는 주장이었다. 연일 쏟아지는 스타들의 성공 스토리에서 우리 아들도 한몫을 차지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 8년 동안 연습생으로 눈물을 삼켰던 가수의 고백도 있었지만, 그래도 스타만 되면 노래 한 곡 또는 몇 초짜리 광고로 ‘간단하게’ 거액을 벌어들인다는 게 아내와 아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세상이란 없다. 남자는 드라마 제작 현장을 본 적이 있다. 방송국에서 들어온 회사 빌딩 장소협찬이 그의 팀 소관 업무였다. 촬영은 꼬박 반나절 걸렸다. 톱스타 네 명이 복도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됐는데, 구경하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로 찍고 또 찍었다. 그래서 중요한 장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방송을 보니까 그게 30초도 안 되는 분량이었다. 네 명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대사를 할 때마다 클로즈업해서 한 명씩 찍다 보니 그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톱스타라도 30초 분량을 위해 30초 동안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장면 30초를 위해 반나절 동안 절대 간단하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TV 혹은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이란 극도로 압축된 ‘편집본’이다.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화려함이나 성공은 그들의 진실 가운데 3%에도 못 미칠 것이다. 엄격한 절제와 혹독한 연습, 바쁜 일상의 반복과 지루한 대기시간이 나머지 97%일 게다. 남자는 아들이 3%로 축약된 ‘편집본’에 혹해 ‘편집된 대부분의 진실’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어쩌다 운이 좋아 ‘깜짝 스타’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거둔 성공이 다음을 위한 차분한 준비와 기다림으로 이어지는 경우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연예인들만이 아니다. 어떤 분야든 예외가 없다. 남의 성공은 십중팔구 화려한 드라마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드라마에서는 준비나 기다림 같은 지루한 대목은 과감하게 압축 편집된다.

따라서 남의 성취에서 제대로 배우려면 편집된 드라마가 아닌, 지루한 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남자는 아들에게 이런 씁쓸한 진실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상복 작가
#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아이돌#TV#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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