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현진]위안부에 눈뜨기 시작한 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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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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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뉴욕 특파원
박현진 뉴욕 특파원
20일 미국 뉴욕 주 나소카운티 아이젠하워파크 내 베터런스 메모리얼(현충원)에서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세워지는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이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나소카운티경찰국 프랭크 커비 순찰국장은 한국 전통 제례(祭禮)의식에 따라 비석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술잔을 들어 위안부들의 넋을 기렸다.

같은 날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미국 뉴저지 주 소도시 팰리세이즈파크 시 제임스 로툰도 시장이 한국 학생들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전 둔산중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특히 지난달 일본 정부 인사와 정치인들이 방문해 기림비 철거를 요구했지만 로툰도 시장이 거절한 것을 고마워했다. 한국의 몇몇 고등학생은 관련 소식을 보도한 필자에게도 e메일을 보내 또 다른 위안부 기림비 설립을 추진 중인 피터 쿠 뉴욕 시의원에게도 편지를 보내고 싶다며 주소를 묻기도 했다. 둔산중 3학년 진유진 양은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언론을 통하거나 역사 시간에 들어보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며 “(미국에서의 기림비 설립은) 이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진 양의 말처럼 미국인들이 위안부에 대해 갖기 시작한 관심은 새삼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미국에서는 앞으로 제3, 4의 기림비가 계속 세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첫 단추는 한인유권자센터와 한미공공정책위원회 등 한인 시민단체들이 채웠지만 미 지방정부 관료와 정치인들까지 이들의 뜻을 선뜻 받아들이는 이유는 뭘까.

물론 지역 내 한인 유권자가 적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기자가 그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위안부 문제를 철저하게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를 전쟁 중에 일어난 대표적인 인권 유린의 사례로 인식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린 세대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소카운티 현충원이 참전용사와 전쟁 실종자를 기리는 비문 외에 이번에 위안부 기림비를 포함해 단 두 개의 민간 기림비만 허락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머지 하나는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희생자 비석이다. 위안부 강제동원과 홀로코스트를 동격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런 움직임은 무엇보다 일본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철거를 요구한 것은 물론이고 여러 경로로 지방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뉴욕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위안부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미국에서 기림비가 계속 세워지면 문제가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에 일본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여성 인권을 탄압한 사례라고 들고 나오니 일본 측도 달리 할 말이 없다. 미일 관계 악화도 들먹여보지만 “(미국이) 홀로코스트 희생자 기림비를 세웠다고 미독(美獨) 관계가 나빠졌느냐”는 비아냥거림만 돌아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일부 한국 정치인과 지방정부가 미국 내 기림비 설립을 직접 지원하려는 움직임은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위안부 추모 열풍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한인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지금처럼 인권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야지 한일 양국의 갈등 사안으로 몰고 가서는 일본에 빌미만 제공할 뿐”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원군(援軍)이 될지도 모를 미국인의 관심을 세심하게 다뤄야 할 때이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
#나소카운티#베터런스 메모리얼#현충원#위안부 기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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