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정미경]미국과 한국의 北인권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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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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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올해 최고의 성공적인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 워싱턴 근교 알링턴 공립도서관의 기획담당자 메리 탤벗 씨는 최근 북한 인권 관련 책을 쓴 2명의 저자 초청 강연회를 끝낸 후 이렇게 말했다. 이 도서관은 지난달 하순 ‘고아원장의 아들(The Orphan Master’s Son)’을 쓴 애덤 존슨 스탠퍼드대 교수와 ‘14호 수용소 탈출(Escape from Camp 14)’의 저자 블레인 하든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1주일 간격으로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요즘 이 두 책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담당자들 사이에 필독서로 통할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고아원장의 아들’은 순수소설로, ‘14호 수용소 탈출’은 탈북자 신동혁 씨의 실화로, 성격은 다르지만 북한 인권 참상을 고발한 점이 비슷하다.

두 사람의 강연회는 주중 저녁 시간에 열렸는데도 150여 명씩 참석해 강당이 꽉 들어찼고 복도에까지 앉아서 들을 정도였다. 탤벗 씨는 “예산이 없어 제대로 홍보도 못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릴 줄 몰랐다”며 기쁨을 나타내고 “올해 말 북한 인권 강연 시리즈 2탄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정부 관료나 학자들은 아니었다. 알링턴이 교외 중산층 도시인 만큼 퇴근 후 시간을 내서 자녀 손을 잡고 온 ‘엄마 아빠 부대’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비록 북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에서부터 북한 주민들은 하루 몇 끼를 먹느냐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 행사는 미국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정책 결정자뿐 아니라 사회 저변으로 폭넓게 퍼져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과 미사일 위협에 못지않게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억압의 땅으로서 북한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미국의 대표적 대북인권 단체인 링크가 벌이는 ‘노마드(nomad·유목민)’ 운동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회원들이 몇 개 팀으로 나눠 버스를 타고 수개월 동안 말 그대로 유목민처럼 미국 전역을 돌며 북한 인권 상황을 알리는 설명회를 여는 것이다. 박석길 링크 정책국장은 “‘이런 곳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은 동네에서도 설명회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다”며 “참석자들은 ‘(북한 인권을 위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꼭 묻는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에 관심을 쏟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한국과의 온도 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최근 동아일보가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실태를 집중 보도해 잠시 국가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관심은 한번 쏟아졌다 그치는 ‘소나기’에 가깝다.

2004년 미국 북한인권법 통과에 큰 역할을 한 수잰 숄티 디펜스포럼재단 대표는 “정작 한국에서 북한 인권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냉대 분위기가 있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고 말했다. 2006년부터 미국에서 ‘북한 자유주간’ 행사를 개최해온 숄티 대표는 북한 인권 문제를 널리 알려야 할 곳은 한국이라는 생각에 2009년부터 아예 행사 장소를 한국으로 옮겼다.

존슨 교수와 하든 기자는 자신들 저서의 한국어판 출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존슨 교수 책은 아직 한국어판 요청이 없고 하든 기자는 최근에야 겨우 한국어판 계약자를 찾았다.

“한국어판 요청이 가장 먼저 들어올 줄 알았는데….” 두 저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자에게 건넨 말이었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북한 인권#미국#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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