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동영]에프킬라와 화염방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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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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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5월 10일 취임한 이후 ‘주폭과의 전쟁’이 치열하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른다는 뜻의 ‘주폭(酒暴)’은 비교적 단순한 폭력에서부터 성폭행이나 살인처럼 중대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술에 취한 채 파출소나 지구대를 비롯한 각종 정부기관에 찾아와 ‘내 세금으로 너희 월급 주는데 나를 이 따위로 무시하냐’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적지 않다. 김 청장은 그런데도 ‘술을 마셨으니’라는 이유로 처벌의 정도를 낮추거나 아예 봐주는 일이 일상처럼 돼버려 뿌리 뽑히지 않는다고 본 듯하다.

사실 말이 ‘전쟁’이지 굳이 전담반까지 둘 일은 아니다. 동네에서 소리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주폭은 신고를 받고 천천히 출동해도 어렵지 않게 붙잡을 수 있다. 각 경찰서의 ‘주폭 검거 실적 그래프’가 연일 빠르게 치솟는 이유다.

서울 광화문 일대는 조금 과장하면 ‘행인 반, 경찰 반’일 정도로 시위 막는 경찰이 상주하고 있다. 정부중앙청사나 덕수궁 대한문 앞,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서울광장에서 매일 어느 단체 혹은 개인이 벌이는 불법시위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불법시위가 발견되면 경찰은 확성기에 대고 신고하지 않았다거나 신고 내용 밖의 시위라는 등의 불법 원인을 지적하며 해산을 요구한다. 경찰의 경고를 듣고 ‘어이쿠, 내가 잘못했구나’라는 표정을 짓는 시위대는 아직까지 보질 못했다. 심야까지 대형 확성기를 틀어놓고 시민을 괴롭히는 불법시위는 분명 주폭보다 더한 민생침해 사범인데도 옆에 서서 ‘그만하세요’라는 확성기만 틀고 있다. 잘못 건드렸다가 ‘과잉진압 경찰청장 물러나라’는 시위를 유발할까 봐 겁내는 듯하다.

주정뱅이를 붙잡는 일은 경찰의 임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술에 취했든 안 취했든 시민에게 공포심을 주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엄히 단속해야 한다. 자제력을 잃을 만큼 과도하게 마셔대는 한국의 풍토를 개선하는 일은 이를 위해 설립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를 확대하면 될 일이다. 그 대신 본연의 임무에 훨씬 충실하기 위해 경찰은 김 청장 말처럼 ‘치안복지’를 위협하는 집단을 단속해야 한다.

학교폭력만 해도 학교마다 전담 경찰관을 두느니, 처벌을 강화하느니 했지만 경찰서장이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폭력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하다. 더구나 주폭 전담반을 만들면서 학교폭력 전담반은 슬그머니 사라지는 중이라고 한다. 학교폭력은 학생 학부모 교사뿐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갖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성과를 낸다. 주정뱅이 단속은 캠페인을 할 필요 없이 신고되면 잡아넣는 것으로 충분한데 신임 서울청장을 맞은 경찰은 학교폭력보다 더 무게를 두고 홍보하는 모양이다. 집창촌이 없어진 이후 진화를 거듭하는 성매매 업소는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경찰은 항상 ‘단속하기 어렵다’고 한다. 성매매 순간을 적발하거나 물증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과잉 수사로 오히려 징계를 받는 일까지 생겨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이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단속을 강화해 보니 상당수의 경찰이 안마시술소 업자로부터 돈을 받아먹은 사실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고 있다.

경찰은 누구와 전쟁을 해야 하는가. 혼자 발광하는 주정뱅이인가, 아니면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불법 시위대인가. 물증 잡기 어려워 단속하기 힘들다면서도 뒷돈은 쉽게 받아 챙길 수 있었던 성매매 업소들인가. “모기는 ‘에프킬라’로 잡으면 되지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이 보여주기 위한 행정을 하느라 이 사회의 기본질서를 허물어뜨리는 존재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김용판#주폭과의 전쟁#주정뱅이#불법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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