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장 못하면 일자리도 복지도 헛구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2일 03시 00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6%로 낮춰 잡았다. 1년 전 4.3%를 반년 전에 3.8%로 하향 조정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5%를 예상했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가능성 등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탓이라지만 정부 공식 전망치(3.7%)보다 더 내려간 수치여서 불안하다.

작년 하반기에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는 반(反)신자유주의 시위 이후 세계적으로 ‘성장=탐욕’ ‘분배=정의’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무상급식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이 같은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총선 및 대선공약에서도 규제 완화나 신(新)성장동력 육성 같은 성장공약이 사라졌다. 그러나 성장 없이 일자리를 창출하기는커녕 지금 있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다. 특히 저성장의 고통은 서민에게 가장 많이 돌아간다.

재정 위기에 빠진 유럽에서 프랑스를 필두로 ‘성장론’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주 주요 8개국(G8) 정상들은 적극적인 정부지출과 함께 성장전략이 유럽 경제를 되살리는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기존의 ‘안정’과 ‘체질개선’ 기조에서 돌아서 경제성장률 제고를 강조하고 나섰다. G8 정상들이 “다만 적절한 조치는 개별 국가마다 다르다”고 성장정책의 차이를 인정했다.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 불안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어서 돈을 풀고 환율을 올려 경기를 자극하기는 힘들다. 독일의 규제개혁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효과적인 성장정책 방안은 노동시장과 기업활동의 규제를 푸는 구조개혁이다. 독일과 스웨덴 같은 노동선진국도 노동 유연성을 높이되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갔다.

의료보건 관광 금융 교육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진입규제를 푸는 것은 유럽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부작용 없는 성장정책이자 일자리 창출정책으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외쳤으면서도 ‘부자와 병원의 이익을 위해 서민을 희생시키는 정책’이라는 좌파의 공세에 밀려 임기안에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송도지구에 국제병원 하나 세우지 못했다.

규제를 풀면 손해 보는 계층의 저항이 생길 수 있다. 이들은 직업훈련과 맞춤형 복지 같은 사회정책으로 지원함이 바람직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활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루트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교수처럼 말했다.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정책 집행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 바란다.
#사설#경제성장#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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