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 ‘민주주의 수호와 부패 척결’ 수사 매진하라

  • 동아일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불법사찰 자료를 폐기하면서 청와대 비서관의 부탁으로 KT 사장이 만들어준 대포폰(차명전화)을 이용했음이 검찰 재수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그 증거인멸, 대포폰 개설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비리 혐의로 구속된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이 KT&G 사장, 대한전문건설협회장, 케이블방송사 회장 등 민간인 수십 명에 대한 사찰을 주도한 것을 뒷받침하는 정황과 문건들도 나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권 핵심의 몇 사람을 위한 ‘사설(私設) 정보기관’처럼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2010년 8월 검찰이 발표한 불법사찰 사건 수사는 부실 수사임이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수사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총리실 직원 3명만 기소하고 끝냈다. 3월 사찰 증거 인멸 사건의 ‘몸통’을 자임해 구속된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은 기소 대상에서 빠졌고, 박 전 차관은 거명조차 되지 않았다. 검찰은 2010년 수사 때 권력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수사를 벌여 증거인멸을 묵인했다는 의심마저 든다.

민간인 사찰 및 증거 인멸 사건과 대통령 측근들의 부패는 이 정권 사람들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전리품 챙기는 데 이용한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 오남용과 부패는 민주주의의 밑동을 갉아먹는 좀벌레다. 검찰은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거듭나 지금부터라도 민주주의와 반(反)부패를 위한 수사에 매진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미온적이다. 검찰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010년 3월 문제의 발언으로 고소당한 이후 2년 동안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조 전 청장이 최근 검찰에서 한 진술 내용을 보면 검찰이 의지만 있다면 차명계좌의 진위를 충분히 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차명계좌의 진위를 분명히 가려줘야 비생산적인 정치 공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통합진보당 중앙운영위원회 폭력사태에 대해서도 검찰은 뒤늦게 시민단체의 고발을 근거로 사건을 공안부에 배당했다. 검찰이 정치 영역에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말은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정당의 공식 행사에서 대학생과 10대까지 가담해 공개적으로 벌인 집단 폭력 사태를 방관한다면 정당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검찰은 폭력의 사전 기획 및 배후세력까지 밝혀내야 한다.
#사설#검찰#민간인 불법사찰#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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