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아직도 노무현은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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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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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정권교체를 원하는 세력에게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때맞춰 보내준 선물일지 모른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다음 달 광우병 촛불집회 4주년 기념 시위를 예고했다. 한 번으로 끝낼 리 없는 이들의 촛불잔치는 19일 노무현 서거 3주기(5월 23일) 서울광장 추모제에서 격하게 만날 공산이 크다. “5월엔 추모행사를 열심히 한 다음 (대선 출마) 결심을 밝히겠다”던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으로선 친노(親노무현)와 반MB(反이명박) 세력을 결집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문재인 대망론’이 떠오른 이유

문재인은 “탈(脫)노무현은 이미 돼 있다”고 했지만 지금 역량으로는 ‘노무현정신’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다. 사실 문재인의 정치철학이라고 나온 것도 없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남자’로 국정 현안에 개입했으나 정작 중요한 일은 못하고, 안 할 일은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형이 세종캐피탈에서 29억7000만 원을 받을 때 그는 민정수석이었고, 대통령 부인이 전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연차의 100만 달러를 받을 때는 비서실장이었다. 거칠게 말하면, 대통령 친인척과 비서진을 챙기는 본연의 업무만 잘했어도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화물연대 파업사태에 끼어들어 법치를 훼손하는가 하면, “직선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은 국민투표로 하는 게 맞다”고 부추겨 노무현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의해 국민의 신뢰를 잃는 데 기여했다.

몇 년 새 문재인의 정치적 판단력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총선 막판에 ‘나는 꼼수다’ 팀을 부산까지 초청해 곁불을 쬐려 한 일이 증거다. 대선에 선수로 뛸 사람이 후보경선 엄정 관리가 생명인 민주통합당 대표 자리에 자기편을 앉히도록 개입해 결국 그 자신도 ‘꼼수정치의 한 축’임을 확인시키고 말았다.

그가 자천타천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된 것도 이런 ‘무(無)의 철학’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쉽게 말해 친노가 ‘도구’로 쓰기엔 정치력도 콘텐츠도 없는 문재인이 딱 알맞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실세총리였던 이해찬은 ‘선거전략의 달인’인 만큼 자신이 주자로 나서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유시민은 ‘네가지’(싸가지)가 없고 자기 정치만 한대서 친노로부터 “우리 식구 아니다” 평가 받은 지 오래다. 스타 결핍에 허덕이던 1년 전, 노무현보다 잘생기고 인품도 있어 보이는 문재인이 4·27 보궐선거 야권단일화를 중재하고 “노무현 운명이 나의 운명”이라며 등장하자 일부 친노는 쾌재를 불렀을 터다.

내 편은 善意가 ‘노무현정신’인가

10년 전 노무현을 도구로 선택했고, 대통령 된 뒤 “나를 놓아 달라”고 해도 안 놔준 세력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산파 친노가 이해찬과 손잡고 문재인을 도구 삼아 구현하려는 그들만의 이상향이 어떤 건지 나는 두렵다. 지역과 이념, 이해관계가 다른 친노 사이에 격렬한 반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체 노무현정신이 뭔지는 원소유주가 세상에 없는 관계로 무한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은 “생전에 얘기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란 표현 속에 다 담겼다”고 했다. 박지원은 원내대표에 나서면서 통합의 정신을 노무현 가치인 양 강조했다. 백원우가 “노무현 가치의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한 것부터 완전히 갈아엎기, 깽판, 막말 같은 극단까지 누구든 원하는 대로 끌어댈 수 있는 만병통치 용광로가 노무현정신이다.

그중에서 공통점을 찾아 한 단어로 줄인다면 ‘선의’가 아닌가 싶다. 노무현이 추구한 가난하고 힘든 이를 위한 복지나 균형발전, 지역주의 해소 등의 정책은 선의에서 비롯됐을지언정 성공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의 능력이나 세계적 흐름, 시장원리와 인간본성으로 인해 실현되기 힘든 정책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선의대로 안 된 것인데도 노무현과 친노는 내 편 아닌 모두를 적으로 공격했다. 친노를 폐족으로 전락시켰던 그 정신과 정책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없음을 어쩌면 노무현도 알았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아들딸을 이 땅 아닌 미국에서 살게 했는가 말이다.

지금도 문재인을 둘러싼 친노는 자기들만 옳기에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노무현과 닮아 있다. 문재인 골수 지지자인 김어준이 나꼼수의 총선 책임론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이 아니다” 한 거나, 이해찬이 “실체도 없는 계파 타령 말자”며 강한 리더십과 단결을 주장하는 게 단적인 예다.

친노 브랜드와 MB심판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정당에 국민은 표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총선에서 확인됐다. 이제는 그만 노무현을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노무현정신 팔고 문재인을 새 도구 삼아 정권을 잡아서는 ‘완전히 갈아엎고’ 그때 그 권세나 누리려 한다면, 노무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도구에 불과한 불행한 대통령으로 남을 뿐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노무현#친노#정권교체#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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