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우]민생법안 만들 땐 생색내더니…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권에서 말잔치가 한창이다. 국민을 위한 온갖 정책이 홍수를 이룬다. 무상과 반값 구호가 넘쳐 나고 인적 쇄신도 요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중 절반 이상이 물갈이 될 것 같다. 기억이 어슴푸레하지만 4년 전에도 그랬고 8년 전에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때도 국민에 대한 배려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참신한 국정 아이디어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던 것 같다. 초선의원 비율도 4년 전엔 45%, 8년 전엔 무려 63%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좋아졌고, 정치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그때 토해냈던 약속들은 얼마나 지켜졌으며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정치 초년생들은 우리나라 정치를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가.

18대국회 계류 민생법안 폐기 직전


불철주야 국민을 위해 헌신한 17, 18대 국회의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긍정적인 정치적 변화에 대한 국민의 체감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국회 폭력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것 같고, 토론과 타협을 통한 의견 수렴도 가물에 콩 나듯 한 정도였다. 드잡이와 싸움박질에 대한 기억만이 선명하다.

그렇게 4년이 흘러가고 또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 두 차례의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 열기가 뜨겁기 이를 데 없다. 그만큼 선심성 정책도 난무하고 공약도 다채롭다. 내년쯤이면 우리나라도 남부럽지 않은 복지국가가 될 태세다.

정치적 경기순환이론이란 것이 있다. 원래 호경기와 불경기는 경제논리에 의해 순환을 거듭하지만 정치가 경제에 끼어들면서 경기순환곡선의 주기가 정치 일정, 즉 선거 사이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선거가 임박하면 정부는 곳간을 열어 선심성 정책을 내놓기 바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국민을 유혹하는 공약을 뿌리기에 여념이 없다. 야당의 선심공세에 맞서 정부가 주머니를 여는 덕에 경제는 호황을 누린다. 그러다 선거가 끝나면 과열된 경기를 식혀야 하기에 긴축 모드로 들어간다. 경기순환곡선은 정치 일정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런 정치적 경기순환이론의 예측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얼핏 논리가 정연해 보이는 이 이론의 정확도가 왜 별로 높지 않은가? 선거 때마다 재원 마련이 막막한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도 사실이고 정부도 이에 질세라 돈을 푸는 일이 다반사인 것 같은데 왜 이 이론은 맞지 않는다는 것인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경기순환 결정에 있어 경제적 변수의 힘이 정치적 변수의 힘보다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정치인들의 약속이 원래 공허한 것이 많아 선거가 끝난 뒤 말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의원들 ‘선거후 민생’만 열심히 외쳐


그럼에도 정치적 경기순환에 대한 논의는 선거철마다 정치평론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뒷전인 채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의 생리가 선거 주기에 따라 강도를 달리한다는 것만큼은 정확하게 간파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년 주기로 장밋빛 청사진을 쏟아내는 일이 꼭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적어도 4년에 한 번씩은 국회의원들이 민생을 위해 정치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 후의 민생 챙기기에는 열심인 의원들이 정작 선거 전의 민생은 뒷전이다. 16일이면 사실상 회기가 끝나는 18대 국회에 계류 중인 시급한 민생 현안이 적지 않다. 카드수수료, 국민연금, 청년창업 관련 법안이 폐기 처분 직전이다. 법안을 만들어 생색만 내고 통과는 시키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국민도 화려한 선거공약에 눈 돌리기보다 밀려 있는 민생 현안을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