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발해史까지 왜곡하는 중국의 역사 조작

  • 동아일보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서기 698년 지금의 중국 지린(吉林) 성에서 발해를 건국했다. 발해의 제2대 무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한 뒤 당나라의 산둥 지방에 수군(水軍)을 보내 공격했다. 무왕은 ‘인안(仁安)’이라는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했다. 중국 주변의 다른 국가들은 중국 연호를 따르고 있었다. 3대 문왕의 딸인 정효공주 묘에서는 ‘황상(皇上·황제)’이라고 쓴 묘비명이 출토됐다. 발해가 황제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중국엔 중대한 도전이었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였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2000년대 중반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억지 주장에 열을 올렸던 중국이 최근 다시 발해사 왜곡에 불을 붙이고 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는 지난해 말 방영한 다큐멘터리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을 통해 “발해는 당나라의 외곽 군사정부이자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했다.

발해사를 포함한 고구려사 왜곡은 2004년에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 긴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당시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역사 왜곡을 중단하고, 역사 문제로 인해 두 나라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번에 중국의 관영 TV가 나서 발해사를 왜곡한 것은 합의 정신 위반이다.

CCTV가 “발해의 건국 주체는 말갈족”이라고 주장한 것도 역사 조작이다. 발해의 지배계층이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사실은 각종 사료(史料)를 통해 입증됐다. 발해의 피지배계층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말갈족 역시 과거 고구려의 일원이었다. 중국에는 없는 온돌을 사용하고 고구려 분묘 방식을 채택하는 등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 나간 근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CCTV는 발해와 고구려의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말갈족을 앞세우고 있다.

중국은 왜 막무가내로 역사 왜곡과 침탈에 나서는가. 북한 붕괴 사태에 대비해 한반도 북쪽 지역이 과거 중국 영토였음을 대외적으로 강조하고 북한 연고권을 선점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청나라 역사를 재정리하는 ‘청사(淸史)공정’을 올해 완료한다. 이 안에 한국사를 청나라 역사의 일부로 서술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경계심을 갖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한민족에 대한 도발이요,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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