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고유환]김정은 체제 생존, 경제해결에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0일 03시 00분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함으로써 무엇보다 김정일에 비해 후계 구축 기간이 짧은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북한은 오랜 기간 김일성 가계 중심의 유일체제를 구축해 왔기 때문에 김정일 사후 곧바로 ‘야심가’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분간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존의 ‘군사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후계가 공고화될 때까지 위기관리체제를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을 곧바로 다음 지도자로 내세울지, 아니면 과도체제를 유지하면서 후계체제를 준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장의위원 명단에 김정은을 수위로 내세운 것을 볼 때 김정은이 후계자임에는 분명하지만 곧바로 최고지도자로 추대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김일성 주석 사후 북한은 삼년상을 치른 이후 당과 국가의 최고 직위를 김정일에게 이양한 전례가 있다. 김정은을 곧바로 최고지도자로 내세우지 않을 경우 ‘김정은 후견체제’ 형태로 친인척과 측근 군부세력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에 직접적으로 저항하거나 새로운 야심가가 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김정은 후계 구축 과정에서 권력투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정성 유무는 북한 내부의 유일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는 군부의 지지 여부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 후반의 카리스마가 부족한 김정은으로의 후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김정일 시대처럼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강조하면서 과거 지향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혁명가계라는 것만으로는 통치하기는 어렵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북한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자력갱생 방식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취약한 김정은 체제를 중국이 후원하면서 권력을 공고히 하도록 도와주고, 중국은 북한에 중국식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형태로 윈윈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중 관계는 1961년 맺은 우호협조조약(동맹조약)이 유지되고 있어, 북한 내부에 급변사태 등 불안 조짐이 보이면 중국은 적극적으로 김정은 중심의 북한 지도부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후계 지도부의 최대 과제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개혁개방을 본격화하여 효율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3대 세습에 따른 정당성의 취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경제난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야심가’가 나타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부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남도발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일성 주석 사후 남측의 군사 대응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던 경험에 비춰 볼 때 내부적으로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하되 필요 없는 자극을 할 필요는 없다. 위기일수록 차분하고 주도면밀하게 위기를 관리해야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북측도 지금은 최고지도자 사후 내부 권력정비 등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협력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고 북한이 안정화될 때까지 사태를 관망하면서 위기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충격이지만 김정일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점에서 김정일 변수에 의한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김정일 시대는 북한 내부적으로도 성공적이지 못했고 한반도 정세 차원에서도 불안정성이 높아졌던 시기다. 김정일 시대 북한은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주력함으로써 한반도 정세가 악화됐다. 남북관계도 일시 진전되다가 다시 대결 국면으로 돌아갔다. 북한 내부적으로 당장은 애도 분위기가 지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난의 행군’으로 점철했던 김정일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데 기대를 걸지도 모른다.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외관계 확장이다. 외부로부터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제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이 6자회담과 남북대화 재개를 재촉했던 것도 제재 등으로 막힌 대외관계를 풀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 주석 사후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보듯 김정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미 핵협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3차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김정일 사망이란 돌발변수가 생겼지만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생존의 ‘중심고리’는 중국의 후원과 함께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푸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체제와 정권 유지 차원에서 북-미 협상을 적극 모색할 것이다.

김정일 건강 이상에 따른 불확실성이 증대돼 오다가 김정일이 사망함으로써 김정일 건강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해소됐다. 하지만 김정일 이후 북한에 대한 또 다른 불안정성이 대두했다. 김정은의 후계 구축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한국과 주변 국가 등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야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고 대외신인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김정은 시대를 대비한 대북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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