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헌정기념관은 올봄부터 ‘윤봉길 의사 항일의거 기념 국회 특별전’을 열고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전시회를 적극 추진했다. 박 의장은 작년 일본 순방길에 윤 의사가 순국한 이시카와(石川) 현 가나자와(金澤)의 암장터 등을 둘러봤고 서울 양재동 윤 의사 기념관과 충남 예산의 생가도 방문했다. 박 의장은 ‘국회보’ 인터뷰에서 “윤 의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당대의 선각자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그분의 삶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박 의장이 “윤봉길 의사의 심정으로” 국회에 최루탄을 던졌다고 윤 의사를 욕되게 한 김선동 의원을 못 본 체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박 의장의 눈치만 살피다 결국 김 의원을 고발하지 않았다.
김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린 날 박 의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부의장에게 맡기고 개화사상가 박규수의 묘소를 찾았다. 대미(對美) 무역개방을 앞두고 140년 전 대원군에게 문호개방을 간청한 박규수의 상징성을 높이 산 모양이다. 하지만 박 의장이 평소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단평(短評)을 잘 날리던 솜씨로 김 의원의 쇄국주의적 폭력성과 애국선열을 모욕한 외람됨을 꾸짖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김 의원은 “윤봉길 의사…” 운운하는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일부 웹사이트는 그를 ‘불멸의 김선동’으로 영웅시했다. 참다못한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지도위원이 2일 한 일간지 귀퉁이 독자투고란에 “참담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썼다. 그날 민노당은 보란 듯이 김 의원을 원내부대표로 선출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등 23명의 의원이 김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한 다음 날이었다. 김 의원의 최루탄 투척을 “당 대표로서 자랑스럽다. 윤봉길 의사였다”고 치켜세운 이정희 민노당 대표가 그를 추천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폭탄 투척 후 일본 군경들에게 주먹 군화 몽둥이로 난타당했다. 중국 신문에 따르면 ‘몸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윤 의사를 일본 군경은 짐짝처럼 차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
김 의원은 올해 4·27 재·보선에서 호남 최초(전남 순천)의 민노당 의원이 됐다. 터줏대감인 민주당이 야권연대 차원에서 후보를 내지 않은 데다 공천에서 탈락한 민주당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표를 분산시킨 덕분이다. 내년 4월 총선 때 이런 상황이 또 벌어질 가능성이 낮아 김 의원의 재선 전망은 불투명했다.
그러나 최루탄 한 방으로 일약 한미 FTA 반대투쟁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김 의원의 당내 입지는 물론이고 민노당의 야권 내 입지도 견고해진 듯하다. 김 의원은 최루탄을 터뜨리고 경위들에게 끌려나오다 방송사 카메라를 보자 느닷없이 “역사가 두렵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선거운동이었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윤 의사의 의거에 감동한 장제스(蔣介石) 당시 중국군 총사령관은 이후 물심양면으로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원해 우리 독립운동의 무대가 중국으로 본격 확대됐다. 윤 의사가 일본군을 향해 던진 물병 폭탄과 김 의원이 민의의 전당에서 터뜨린 최루탄을 동렬에 올려놓은 것은 역사에 무지할뿐더러 참으로 철없는 발상이다. 박 의장도 침묵할 일만은 아니다. 19대 총선이 치러질 내년 4월은 윤 의사 의거 80주년이 되는 달이고, 18대 대선이 치러질 내년 12월 19일은 윤 의사 순국 80주기가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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