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마트폰 소유자의 사생활 ‘훔쳐보는 자’ 누군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미국 이동통신회사들이 스마트폰에 내장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용자의 문자메시지, e메일, 통화기록, 방문한 웹사이트, 열람한 동영상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스마트폰에 깔린 소프트웨어 ‘캐리어IQ’는 이용자가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되며 키패드에 입력되는 거의 모든 정보를 기록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거대한 감시자’가 따로 없다. 캐리어IQ사(社)는 삼성전자와 대만의 HTC 등이 제조한 1억4000만 대에 이 프로그램이 설치됐다고 밝혔다.

미국 통신회사들은 통화품질 향상을 비롯한 기술 개발을 위해 제한적으로 정보를 수집했을 뿐 해당 정보를 유출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생활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다. 전자상거래가 늘어나 계좌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 노출된 사생활이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 사법당국은 스마트폰만 분석하면 피의자 행동의 상당 부분을 알아낼 수 있어 새로운 과학수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통신업체들은 미국 통신사들의 요구로 수출용 스마트폰에 캐리어IQ를 설치했지만 국내용에는 설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취재 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에 있는 ‘데이터통신설정’ ‘프로그램모니터’ ‘거울’ 등 3가지 앱(응용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연락처, 위치정보, 녹음 내용 등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용자에게는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해주지도 않았다. 프로그램 개발자는 “개발 과정의 단순 실수이며 실제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미국에서는 이미 통신회사와 휴대전화 제조사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고소인들은 다른 피해자들을 고려해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부과하는 징벌적 배상을 청구했다. 국내에서도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소송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2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스마트폰은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저장 공간이 수십 GB(기가바이트)를 넘어 휴대용 컴퓨터라고도 불린다. 관련 업체는 스마트폰이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거나 해킹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정부당국도 각종 앱이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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