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주행]‘물수능’, 시험과목-문항 수 확대로 보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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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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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행 중화고 교장
조주행 중화고 교장
매년 수정 발표되는 대학의 입시요강이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다. 이 때문에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학원이나 대학이 개최하는 입시설명회에 몰려다니며 우왕좌왕하는 걸 보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원망이 되어 학교로 쏟아져 학교의 권위가 실추되고 불신이 증폭돼 고교, 특히 일반계 고교는 실로 참담한 지경이다.

만점자가 1% 나오도록 난도를 낮추고 EBS 강의교재에서 70%를 연계 출제하겠다는 정부 발표의 결과로 6월 모의고사 점수가 높아지자 ‘물수능’으로 동점자가 늘어 수시 경쟁이 격화되고 사교육이 심해질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중상위권 학생들의 점수는 올랐지만 하위권 학생들의 점수는 별반 상승하지 않아 물수능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난도가 낮았던 해에도 대학들이 동점자 처리 규정을 만들어 신입생을 선발한 경험이 있다. 겨우 5과목, 과목당 20∼50문항, 총 220문항의 시험 성적으로 70만 명이나 되는 수험생의 석차가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난이도를 조정해도 동점자 발생은 불가피하다. 이를 막기 위해 난도를 너무 높이면 유명 대학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중하위 그룹에서 동점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나머지 대학이 곤란해지므로 결과는 매한가지다.

난도를 낮추면 수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이 재수를 택해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지금도 학생들은 수시에서 1인당 5∼10개 원서를 쓰고 있어 경쟁률이 더 높아질 이유가 없다. 또 난도가 낮으면 사교육 요인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교육이 증가할 이유도 없다.

난도가 높으면 학교는 우수학생 중심의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어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게 된다. 난도를 낮추지 않은 상태로 수능의 70%를 EBS 강의교재에서 연계 출제하면 오히려 사교육을 확대하고 고교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을 조장할 수도 있다.

12년간의 학습성과를 220개 문항으로 판정하고 시험일수를 단 하루로 잡아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시간 시험을 보게 하는 것 등은 학생에게 가혹한 일이다.

우리나라 수능의 난도는 미국 수능인 SAT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출제자나 원작자도 모르는 문제가 출제돼 매년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주요 원인은 수능이 제도 본래의 목적과 달리 선발고사로 변질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전환하고 신입생 선발을 대학의 자율에 위임하는 것이 최선이다. 차선으로 시험과목 수를 확대하고 과목당 문항 수를 늘려 시험일수를 이틀로 연장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시험과목 수가 줄면 고교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을 가속화해 정보화시대가 요구하는 통섭형 인재를 육성하기 어렵다.

2009교육과정이 입학사정관제를 지원하기 위해 정규 교과의 이수단위를 축소하고 창의·체험시간을 파격적으로 늘린 것은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입학사정관제는 공정성과 객관성에 한계가 있어 지필고사를 보완하는 제한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목고는 상위권 우수학생을 뽑아 교육과정의 50%를 입시과목 중심으로 선택 편성하여 집중적으로 입시공부를 하도록 각종 특혜를 주고, 상대적으로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일반계 고교에는 전체 과목을 이수하게 해 같은 수능을 치르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제도적 불평등이 아닐 수 없다. 특목고에 허용된 모든 특혜를 일반계 고교에도 즉각 허용해야 한다.

성적이 낮을 뿐만 아니라 학업에 뜻이 없는 학생들을 일반계 고교에 배정하지 말고 실업계 고교에 배정해 취업에 필요한 기초기능을 익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양극화를 완화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 사회적 화합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조주행 중화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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