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막중]지방, 국책사업에만 매달리지 말라

  • Array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최막중 서울대 교수 도시계획학
최막중 서울대 교수 도시계획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와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 선정 결과가 발표됐다. 이 두 가지 사안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만 해도 대전 충남 충북, 전북, 광주 전남, 대구 경북 울산, 경남에 이르니 가히 수도권 이남의 한반도 전체가 홍역을 치른 셈이다. 노무현 정부 때 지역 간 갈등은 수도권 대 비수도권 구도로 진행됐다. 반면 이명박 정부 들어 첨단의료복합단지와 동남권 신공항에서 LH 본사 이전과 과학비즈니스벨트에 이르기까지 비수도권의 지역 간 갈등이 후폭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정부 의존 지역발전엔 한계

그 대상이 첨단의료복합단지이든 동남권 신공항이든 또는 LH 본사이든 과학비즈니스벨트이든 그동안 지역마다 각종 국책시설과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결사 항전하듯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국책시설이나 공공기관 유치가 과연 해당 지역의 발전 전략에서 어느 정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차분히 돌이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지역이 애당초 의료산업이나 과학기술, 또는 건설업 등을 지역 발전을 위한 전략적 핵심기능으로 선정했던 것인지, 만약 중앙정부가 첨단의료복합단지나 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을 들고 나오지 않았더라도 우리 지역이 먼저 그런 시설 조성의 필요성을 지역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으로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책시설이나 공공기관 유치는 근본적으로 중앙정부의 배분에 의존하는 외생적(外生的) 지역 발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지역 발전의 출발점과 원동력이 해당 지역이 아닌, 지역 외부에 자리하고 있는 중앙정부로부터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생적 지역 발전 전략하에서 지방정부의 능력은 단적으로 중앙정부에서 얼마나 많은 배급을 받아왔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따라서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전에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무조건 손부터 내밀고 읍소하여 가능한 한 많이 타 와야 한다.

이러다 보니 중앙정부의 배분은 지역 간 형평성을 고려하여 골고루 나눠주는 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종종 ‘태산을 쪼개 티끌을 만드는’ 우(愚)를 범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의 일환인 LH 본사 이전 문제에 있어 그 지역이 어디든 주공과 토공을 통합하여 만든 LH가 한 몸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토지를 조성하고 주택을 건설하는 일이 일체화된 과정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공과 토공의 통합 문제는 거의 20년을 끌어오면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겨우 매듭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시설 유치로 자생력 갖춰야

물고기를 잡아다 주기보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탈무드의 격언은 지역 발전 전략에도 유용하다. 중앙정부에 의한 국책시설이나 공공기관의 배분보다 지방정부 스스로 지역 고유의 특성에 기초하여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전략적 기능과 산업을 선택하여 기업이나 시설 등을 유치할 수 있는 권한과 재원을 넘겨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번에 유치 경쟁에서 탈락한 지역에 시범적으로라도 LH 본사나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버금가는 기업이나 시설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유치할 수 있도록 하여 자생적 내생적(內生的) 지역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주권(主權)을 부여해 주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점에서 다국적 기업이 한국에 입지하는 최초의 사례로서 다국적 화학그룹인 솔베이가 글로벌 본부를 우리나라로 이전하겠다는 소식은 LH 본사 이전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이 앞으로 제2, 제3의 솔베이를 유치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면 말이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 도시계획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