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현진]어느 베트남 CEO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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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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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베트남의 이미지는 한국인이 관광을 떠나 흥청망청 노는 곳, 다문화가정의 아픔이 밴 나라 정도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베트남 토착 기업인 비텍스코그룹이 호찌민 시에 세운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68층· 282m) 완공식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본보 기자를 초청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14년의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밖에서 들은 소식과는 달리 상흔(傷痕)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외국인 투자가 늘고 있지만 10층 내외의 상업용 빌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도심은 여전히 노후돼 있었다. 이런 곳에 한국의 63빌딩보다 높은 초고층빌딩이 들어선다는 것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난달 31일 열린 완공식에서 부꽝호이 비텍스코그룹 회장은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1985년 창업 이후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내 국적을 맞히려는 택시운전사가 많았다. 2000년 초 파리 출장을 갔을 때도 일본, 한국, 중국에 이어 싱가포르, 태국 등이 줄줄이 나왔지만 끝내 베트남에서 왔냐고 물어본 운전사는 없었다. 결국 내가 국적을 얘기했다. 그때 그 운전사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내게 ‘뱅뱅(bang bang)’이라며 웃었다. 아직도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베트남은 세계에서 여전히 헐벗은 전쟁 승전국일 뿐이었다.”

완공식을 가진 10월은 탕롱(지금의 하노이)에 베트남이 도읍을 정한 지 1000년이 되는 달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이 빌딩을 지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며 “새로운 베트남(New Vietnam)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순간 16일 새로운 주인이 결정된 현대건설의 창업자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1970, 80년대 쏟아냈을 눈물이 오버랩됐다. 이 행사에 참석한 한 한국 인사는 “여의도 63빌딩이 1980년대에 세워졌으니 베트남은 꼭 우리보다 30년 뒤진다”며 이날 완공식을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부꽝호이 회장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깎아내릴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잊혀진 기업가정신을 다시 보는 듯해서였다.

한국은 개발경제 시대를 지나 잠재성장률 4%대의 안정적인 국가로 변모했다. 이미 일본은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앞서갔다. 세계기업가정신모니터(GEM)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창업 활동률은 2.2%로 주요국 중 최저 수준이다. 결국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물려주고 말았다.

한국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주요 그룹이 신수종사업으로 제2의 창업 선언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는 움츠러들어 있다. 올해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둔 내부 유보금도 사상 최고 수준이다.

1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비즈니스서밋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위기 극복을 해왔지만 정부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민간기업이 기업가정신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가가 흘리는 눈물은 고통과 감격의 눈물,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목격한 것은 각종 비리로 얼룩진 고통의 눈물이었다. 오랫동안 잊혀져 온 한국 기업가의 산뜻한 눈물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베트남에서 간절했다. 그 눈물 속에 해당 기업, 임직원, 협력업체를 위한 꿈은 물론이고 한 단계 도약을 앞둔 대한민국의 희망까지 담겨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박현진 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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