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성철]국회, ‘장애인 후견제’ 언제까지 외면할건가

동아일보 입력 2010-09-15 03:00수정 2010-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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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모 씨(72·여)는 요즘 딸 생각만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 정신분열증을 앓아 결혼조차 못한 딸 A 씨(38)에게 유일한 재산인 건물 한 채를 물려주고 싶지만 A 씨는 스스로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한때 A 씨의 오빠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방법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들이 자신이 죽고 나면 자칫 동생의 몫을 탐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2. 사회복지법인 운영자 박재우 씨(40)는 최근 서울 인근의 한 병원에서 우연히 지인 B 씨(46)와 마주쳤다. 2년째 입원 중인 B 씨는 박 씨에게 “병원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겠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B 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증세가 가벼워 자잘한 일들을 도와줄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병원 밖에서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정도다. 하지만 B 씨는 유일한 혈육인 형과 형수가 퇴원을 반대해 선뜻 병원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평생 근심은 ‘내가 세상을 떠나면 누가 내 아이를 돌봐줄까’ 하는 문제다. 그래서 법무부가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한 민법 개정안은 기존의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에 대한 후견제도 외에 상속재산 문제 등 일시적이거나 특정한 분야에 대한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특정 후견제도’를 담고 있다. 또 후견인이 권한을 남용해 상속재산을 팔아치우는 등 횡포를 부리는 것을 막기 위해 후견인 감독제를 도입하고 일정 범위 안의 친족으로 국한돼 있는 후견인 범위를 법인으로까지 크게 넓혔다. 가령 이 씨의 경우에는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 딸 A 씨의 재산을 관리해줄 후견인으로 사회복지법인이나 변호사를 지정할 수 있다. B 씨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생계지원을 받는 등의 일을 도와줄 사회복지사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면 병원 밖에 나와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장애인 가족들의 가슴 깊은 곳에 박혀 있는 ‘대못’을 뽑아주는 일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국회는 법안이 제출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성년 후견제도 도입 논의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요즘 민법 개정 주무부서인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는 장애인 가족을 둔 이들의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묻는다. “돈이 안 되고 큰 관심을 못 받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의원님 자식이 장애인이라면 이렇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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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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