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여성이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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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6일 2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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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있다. 여자들은 자기보다 잘난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선거에서 여성 후보에게 표를 찍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지만 여성들 자신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 하지만 남성의 적은 남성이 아니던가. 남자도 자신과 경쟁이 될 만한 상대에게 결코 인심이 후하지 않다. 이것은 인지상정이지 여성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설사 여성이 여성을 찍지 않는 바람에 선출직에 여성 진출이 어렵다고 치더라도 임명직에서조차 여성은 자꾸 줄어만 간다. 지난번 8·8개각과 대법관 추천, 최근 23명이나 되는 차관 인사에서도 여성은 지난 정권에 비해, 또 이번 정권의 초기에 비하여 현저히 줄고 있다.

사실 여성 장관이 내정된다 해도 지금까지는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으로 한정되었다. 구색 갖추기라는 비난도 있지만 그나마 내정되자마자 낙마 대상 1순위에 항상 여성이 거명되곤 했다. ‘문제가 있으니까’라고들 하겠지만 한편으로 교묘한 저항일 수 있다. 그나저나 이제는 구색 갖추기나마 시들어가고 낙마 대상으로 점찍을 여성조차도 없다.

오래전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을 순방하던 중 공항에 영접나온 장관도, 백악관에서 맞이하던 고위직도 줄줄이 여성인 모습을 보고 또 여자냐며 놀랐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외국에 파견 나갔던 동료 검사가 국제회의에 참석했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남자끼리 온 것을 보고는 왠지 부끄러웠다고 한 적도 있었다. 왜 여성이 없냐고 하면 대개 인물이 없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여학생이 다 1등이라면서, 고시는 여성 합격자가 훨씬 많다면서 왜 없을까. 한국 여성은 유난히 실력이 떨어져서라는 대답이 정답일까. 아니면 찾지 않고 키우지 않아서일까.

보이지 않는 장벽에 공직진출 줄어

2006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여성법관회의에서는 어떤 사회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아무리 우겨도 여판사가 없다면, 여성 장관이 없다면, 여성 의원이 없다면 뭔가 평등하지 않다는 징표가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시험으로 법관을 선발하는 나라들은 여성의 비율이 높으나 학식과 덕망 등의 요소로 법관을 임명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여성 비율이 낮았다.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을 암시케 한다.

심지어 여판사들은 가정을 돌보느라 동료들과 골프를 같이 칠 수 없기 때문에 출세가 어렵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도 돌아보게 한다. 여성은 술자리 학연 지연 등의 비공식 네트워킹에 약하다. 일 살림 육아로 1인 3역 또는 1인 4역으로 힘이 분산되는데 남성들은 부인의 내조까지 받아 2인 1조로 뛰니 힘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톱가수 보아도 자신에게는 내조하는 아내가 필요하다고 했을까.

필자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법대에 다니고 판사로 출발한 1980년대 말만 해도 여성은 그냥 여학생이었고 여판사였다. 여판사들 간에도 다른 점은 엄청 많은데 그냥 여자라는 이유로 모두 여판사로 치부되었다. 헌신적인 어머니 아내, 그리고 각종 서비스 분야의 도우미들을 통해 여성을 경험한 당시의 남성들에게 진정한 동료로서의 여성 경험은 없었다. 달라서 불편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아주 잘해 주어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지금 사회 각 분야의 중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대개 그때 그분들이니 여성에 대한 경험과 신뢰의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 각각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다. 다르다는 것이 못하다는 말로 치부될 수는 없다. 여성은 의전과 형식에 약하다고 하지만 반대로 유연한 리더십을 가지고 소통과 화합에 능하다. 판사시절 세계여성법관회의를 준비하면서 여성 대법관과 초임 여판사가 마주 앉아 주저 없이 각자의 담당 사항을 속사포로 진행하던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세상의 절반, 여성과의 소통 절실

필자가 법원의 파견으로 대한미용사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그 대의원총회가 열렸을 때 멀리 지방에서 온 대의원들의 자리를 앞쪽에 배치한 배려가 신선했던 기억도 있다. 여성들은 소수자로 살아온 경험들이 있는 사람이라 자연스레 약자에 대한 배려, 불편한 이들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 성희롱, 저출산, 가정·소년 문제에 대한 세심한 눈이 있다. 21세기형 융화와 통합의 리더십, 자연스럽고 유연한 국제적 리더십에 장점이 많다.

요즘 소통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는데 소통은 서민과만 필요한 게 아닐 것이다. 소통은 젊은이들과만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과의 소통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김영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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