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진주현]유해 발굴은 전사자 마지막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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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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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멕시코 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시간이 남아 동네를 둘러봤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답게 선인장이나 서부 영화 관련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었다. 건물 귀퉁이의 작은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계산대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주인 할아버지가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책 읽기에 열중했다. 발길을 돌리던 찰나에 선반 위의 책 한 권이 시선을 잡았다. 제목에 ‘코리아’라는 단어가 들어간 6·25전쟁 관련 책이었다. 할아버지가 한국에 대해 좀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이번에는 6·25에 대해 좀 아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대화가 시작됐다.

팔십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는 6·25에 참전해 함경도 근처에서 1년을 보냈다면서 한국의 겨울이 정말 추웠다고 했다. 당시 한국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해서 뉴스를 통해 접하는 요즘 한국의 모습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동네 한국 교포들이 잊지 않고 참전 미국인을 위해 조촐한 기념식을 열어주는 게 참 고맙다고 했다. 내가 전쟁 실종자의 신원 확인과 관련한 일을 한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함께 싸우다가 전사한 전우를 찾는 일을 한다니 정말 고맙다며 웃었다.

내가 일하는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제이팩)’는 실종자를 찾아서 신원을 확인한 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미국 국방부 소속 기관이다. 미군 실종자가 발생한 지역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지 간다.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실종 경위와 위치를 파악하면 고고학자와 군인이 간다. 거기서 발굴한 유해나 유품은 하와이의 사령부로 보내서 나 같은 인류학자가 중심이 되어 신원 확인에 들어간다.

6·25는 60년이나 지나서 유해와 유품의 훼손이 심한 경우가 많다. 분석 작업에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다. 아직도 찾지 못한 6·25전쟁 도중 실종된 미군이 수천 명이지만 제이팩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으러 다닐 예정이다.

제이팩의 인류학 감식 연구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감식 전문 연구소로서 석박사급 연구원 수십 명이 근무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규모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열을 바쳐서 일하는지, 이 일을 미국인이 얼마나 박수 치며 응원해 주는지 몰랐다. 우리나라 땅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의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뜻깊은 일을 한다는 사실에 나부터 열정을 갖고 일을 하고 있는 데다 미국 정부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니 힘이 솟는다.

유해 발굴 작업에 대해서 언급하자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전의 일에 뭐 하러 그런 돈과 시간을 들이는 거야!” 물론 세상을 사는 데에는 당장 눈앞의 이익을 내는 일이 중요하다. 한정된 예산을 더 급한 일에 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6·25는 우리 땅에서 일어났다. 외국에서는 실종된 자국민을 찾으러 오는데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에게 무심한 게 아닌가 싶어서 서글플 때가 있다.

내 할아버지 할머니는 전쟁 중인 1950년 12월에 흥남 부두에서 철수하는 미군 함정에 올라타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육군 8사단에 입대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2년을 싸웠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에 살아남았고 다른 가족도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옆에서 같이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분이 많고 아들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아버지를 유해로나마 다시 만날 수 있게 하는 일.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값진 일이 아닐까.

진주현 미국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PAC)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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