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 신흥 ‘완장’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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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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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 뒤 지방자치단체장이 뒤바뀌는 지역에서 권력이동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당선자들의 측근 중에는 권력을 잡은 위세로 공직사회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거나 한자리를 노리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인사들이 설치고 다니면서 공무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충청권의 한 기초자치단체장에 당선된 A 씨는 선거를 잠시 도와준 B 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무실에 나와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고 한다. 사업과 관련해 뭔가 바라는 눈치이고, 주변에 자신이 한자리할 것이라고 행세하면서 벌써 인사청탁 등 온갖 잡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A 씨는 “임기 동안 큰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 당선자(민주노동당)는 최근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무원들의 인사 불이익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민노당 구청장이던 2004년 전공노 파업으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 45명 가운데 상당수를 승진까지 시켰다가 후임인 강석구 현 구청장(한나라당)이 승진을 취소한 것을 윤 당선자가 다시 원상회복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에선 인수위 관계자들이 행정기밀에 속하는 도시계획을 내놓으라고 공무원들을 윽박지르는 통에 공무원들이 죽을 맛이라고 한다.

시도교육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진보 교육감 6명이 당선된 뒤 전교조 인사들이 인수위원회 등 자문그룹에 대거 포진해 실세 노릇을 하고 있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당선자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는 민주노동당 가입 등으로 기소돼 징계 대상인 교사 2명도 배석했다. 징계 대상자가 징계 주관 기관으로부터 버젓이 보고를 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강남 등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65%도 껴안겠다고 ‘센스 있는’ 약속을 했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도 정작 태스크포스(TF)팀은 전교조 일색으로 채워 교총이 불참을 선언했다. 한 교육공무원은 “TF를 보면 어떤 교육정책이 나올지 뻔하다”며 “전교조 인사들이 벌써 목에 힘을 주고 내려다본다”고 말했다. 캠프 참모들끼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벌써 내분이 벌어진 곳도 있다. 참여정부 때 전교조 간부들이 교육인적자원부 사무실을 무시로 들락거리고 공무원들이 이들의 눈치를 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투기로 졸부가 된 최 사장의 눈에 들어 마을 저수지 양어장 감시원 자리를 얻은 건달 임종술은 완장을 찬 뒤 마을사람들에게 안하무인으로 군림을 한다. 알량한 권력에 맛이 들어 초등학교 동창 부자까지 폭행한다. 어느 날 저수지로 나들이 온 최 사장의 일행에게 행패를 부리다 해고되지만 완장일은 놓지 못한다. 저수지 물 문제로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다 급기야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임종술은 완장의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완장의 폐해’는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문제는 완장들은 한때 거들먹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고리 권력’을 빌려 필시 한몫 챙기려 할 것이기 때문에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남도교육청 간부들이 새로 당선된 진보 교육감에게 왜 당선축하금 봉투를 내밀었겠는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무소속이든, 보수 또는 진보 교육감이든 이런 완장들을 멀리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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