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法의 날’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

  • 동아일보

준법정신을 생활화하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하기 위해 제정된 ‘법의 날’이 내일로 어언 47회를 맞는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전쟁과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며 우리 국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해 적지 않은 시련과 고초를 겪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의(民意)가 온전히 반영된 민주헌법을 갖게 된지도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의 준법의식과 법의 생활화가 경제발전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법은 권력자들을 위해 봉사할 뿐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솔선해 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적법 절차에 따라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지키며 의회를 운영해야 할 정치권은 법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법률 위반을 저지른다. 법치의 성숙을 위해서는 법을 다루고 법을 잘 아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부터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올해 법의 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든 집단은 검찰이다. 스폰서 추문(醜聞)은 법질서 수호자로서 어떤 전문직보다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할 검사들이 부끄러운 타성에 젖어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조직 전체가 통절한 반성과 대오각성을 통해 거듭나는 산통(産痛)을 거쳐야 할 것이다.

사법부 역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 개혁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날이 돼야 한다. ‘전관(前官)예우’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일부 판결에서는 판사들이 재판을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이념의 실현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한국의 준법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경찰청 조사 결과 지난해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국민 신뢰는 100점 만점에 63.5점, 국민의 법 준수는 52점에 불과했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과 국민 모두 반성이 필요하다.

개인과 기업이 삶과 경제활동을 안정적 기반 위에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법치의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법의 제정과 집행 그리고 해석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지도층이 솔선해 법을 지키고 국민이 생활 속에서 법을 실천하는 선진 법치사회로 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