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양섭]시부사와와 도요타, 그리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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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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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청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867년 프랑스 우편선을 타고 파리로 향한다. 파리 만국박람회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그는 55일간의 항해 끝에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그는 파리를 비롯해 유럽을 돌아다니며 은행과 제도 등 선진 문물을 두루 섭렵한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귀국한 그는 대장성에 들어가 그 경험을 토대로 개혁 작업에 참여한다. 그러다 4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실업계를 선택한다. 먼저 제일국립은행 행장을 지내다 도쿄해상화재보험 도쿄증권거래소 제국호텔 기린맥주 등 500여 개 기업의 설립에 관여했다. 그러면서도 도덕경영을 추구한 그를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부른다. 이런 선각자의 노력으로 동북아의 소국 일본은 일약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해 20세기 말에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 20세기 말 잃어버린 10년에 이어 정체의 10년을 겪더니 새로운 10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도요타 사태가 터졌다. 도요타자동차가 어떤 기업인가. 일본 품질신화의 대명사다. 그 대표 브랜드 렉서스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제목으로까지 인용됐다. 그는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책에서 렉서스를 세계화 선진화의 상징으로 꼽았다. 이제 렉서스 하이브리드마저 대량 리콜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여기에는 무너져 가는 포드자동차 등을 살리려는 미국의 의도적인 때리기가 가세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도요타의 자만이 불러온 화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얼마 전 일본항공이 방만한 경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일본 최대의 여객기 좌석 제조업체가 좌석의 안전도 검사 자료를 조작하는 일까지 생겼다. 시스템 어딘가에 구멍이 났다는 뜻이다.

외교적으로도 신임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는 삐걱거린다. 지난해 도쿄에서 만난 아사히신문 편집간부에게서 “하토야마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주류 출신으로 총리가 되면 독자 노선을 펼 것임을 예고한 말이었다. 요즘 하토야마 총리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미국과 냉랭하다. 미국과 찰떡궁합이었던 전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와는 다르다.

일본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중국에 추월당해 3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나라건 부침이 있게 마련이다. 로마가 그랬고, 당시에는 미국보다 큰 나라였다는 당(唐)나라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도 사라졌다. 200년 동안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던 미국도 금융위기 이후 하락세다. 나라가 망하거나 쇠하는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고, 또 그것을 짚어내는 것은 학자들의 몫일 테지만 요즘 전체적으로 일본이 활력이 떨어지고 중국이 올라서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금융위기 이후 어느 나라보다 빨리 회복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막상 안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상 실업자가 400만 명에 청장년 취업자가 1500만 명을 밑도는 등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 거기에 세종시를 비롯한 각종 갈등으로 사회가 갈라지고 있다. 갈등은 어느 사회나 존재한다. 다만 갈등을 풀어내는 시스템을 마련하느냐가 도약의 열쇠다. 갈등을 봉합하는 그 경험이 흥하는 나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도 성쇠(盛衰)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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