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어제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돼 역동적이고 기민한 민생정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세종시를 찾아간 데 이어 매주 2, 3회씩 전국 각지를 다닐 예정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직접 만나 민생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정 대표가 다수결로 처리된 미디어법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내놓고 예산심의 등 의원 본연의 임무는 넉 달 가까이 팽개친 채 국회 밖으로만 돌면서 민생정치를 외치는 것은 본말전도(本末顚倒)다.
12일 시작된 국회의 내년 예산안 심의는 민주당의 거부로 파행하고 있다. 이 상태로는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다음 달 2일을 넘길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졸속 심의가 예상된다. 14일자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정부가 내년 4대강 예산의 총액만 제시하고 세부항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를 이유로 국토해양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의를 거부한 것은 국정의 발목을 잡으려는 정략적 의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4대강 예산은 3조5000억 원으로 총예산 291조8000억 원의 1.2%에 불과하다. 제1야당이라면 4대강 예산의 세부항목 공개는 요구하더라도 예산심의는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이 옳다. 1.2% 예산 때문에 예산심의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개의 꼬리를 붙잡고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동아일보가 민주당 지역구 의원 60명을 대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영산강 등 수질 개선이 급한 곳에 대한 사업 일부 실시’ 등 조건부 찬성이나 의견 표명을 유보한 비율이 40%에 달했다. 당 지도부가 반대로만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예산 심의과정에서 4대강 예산의 적절성에 대해 따지면 될 일이다.
민주당은 4대강 예산 때문에 복지 교육 분야 투자가 미흡하다며 대학등록금 반값 인하 등 교육 복지예산 대폭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 집권 경험이 있는 야당으로서 ‘퍼주기 예산’을 남발하면 민생과 경제에 주름살이 늘어남을 잘 알 텐데도 이러니 무책임하다. 내년 복지 분야 예산안은 81조 원으로 올해보다 8.6% 늘어 전체 예산안 증가율 2.5%를 훨씬 웃돈다.
정 대표의 ‘생활 정치 현장 속으로’라는 슬로건도 합리적인 내용이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예산심의를 태업(怠業)하면서 민생정치를 외치면 공허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