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동호]비핵·개방·3만

  • 입력 2008년 10월 27일 02시 58분


“쟤네들은 왜 또 만나자는 거야?” 문득 TV 화면을 보더니, 친구가 물었다. 북한이 남북 군사실무자 접촉을 제의했다는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째 온통 엉망일 뿐인 경제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이미 어지간히 술에 취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도 도마에 올랐다. 주식은 70%가 날아갔고, 환율은 40%가 올랐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이 부도날 확률은 70%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었다. “안 그래도 죽을 맛인데, 대체 쟤네들까지 왜 그래? 얼마 전엔 중대발표니 뭐니 해서 신경 쓰이게 하더니. 이 판국에 또 뭘 골치 아프게 하려고 그래?”

사실 그의 말에는 남북관계의 핵심적 문제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다분히 경쟁적이었다. 6·25전쟁 이후 북한은 대결과 극복의 대상이었고, 노태우 정부의 ‘7·7선언’ 이후에는 협력과 갈등의 대상이었다. 비록 성격은 변했으나, 우리와 북한을 기본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놓고 바라보는 시각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힘의 균형이 바뀌었을 뿐이다.

北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1970년대까지는 북한이 언제 다시 도발하거나 테러를 자행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경계의 상대였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국력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북한에 대한 우월감을 바탕으로 포용의 상대로 인식하게 됐다. 예를 들어 ‘형님론’이나 ‘햇볕론’이 그것이다. ‘형님론’이란 우리가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는 큰형이니 비록 북한이 사고 치기 잘하는 아우라 하더라도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햇볕론’ 역시 우리의 따뜻한 바람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형님론’과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남북관계를 일정 정도 진전시키는 효과도 발휘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대북 인식에는 정작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바로 ‘우리’에 대한 것이었다. ‘형님론’이든 ‘햇볕론’이든 그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이익을 갖게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전략이 없었다. 결국 남북경협 활성화가 중요한지는 알지만 이제는 진부하게 들리고 남북갈등보다 남남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주장이 지겹도록 제기되는 이유는 그동안의 대북정책이 ‘우리’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하지 못한 탓이다. 도대체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북한 경제를 지원하고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제 북한은 경쟁이나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돼야 한다. 북한이 1년 내내 수출하는 액수를 우리는 하루에 수출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실정에서 경쟁이니 ‘기 싸움’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세계 10위에 근접하는 국력을 보유했지만 북한은 ‘이미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로서 모든 지표에서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지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은 자신의 숙식비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을 정도이다.

한 국가의 외교정책이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북정책 역시 기본적으로는 ‘우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같은 민족으로서 지원과 변화 유도를 통해 북한 주민의 궁핍한 삶을 개선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정책이란 그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발전과 경제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퍼주기 논란이 끊임없이 지속된 것도 대북정책이 북한만을 생각했을 뿐 ‘우리’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데에 근본적 이유가 있다.

남북 아우르는 종합전략 세워야

따라서 이제는 남북한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며 미래를 구상하는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경제가 이처럼 마냥 추락하는 상황에서 북한마저 이상한 행태를 보인다면 우리 경제의 추락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핵·개방·3000’도 바람직한 정책 방향은 아니었다. 북한의 비핵과 개방 유도를 통해 우리 경제의 3만 달러 소득 방안을 제시하는 ‘비핵·개방·3만’ 구상이었어야 한다.

이젠 가자고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며 친구가 일갈했다. “너 전공이 북한 경제라며? 인마, 남한 경제나 신경 써!”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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