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한대와 55년 동고동락 남태동 할아버지

  • 입력 2001년 1월 29일 18시 33분


“이 자전거로 7남매를 공부시키고 우리 식구가 그동안 생계를 유지해 왔어요.”

해방 직후(1946년) 우체국에서 쓰던 일제 ‘후지’ 자전거를 당시 돈 10원에 구입해 55년동안 타온 70대 노인이 있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거문리 남태동(南泰東·77)할아버지.

그는 당시 평창 대화우체국에서 쓰던 자전거를 불하받아 가보처럼 아끼고 수리하며 지금까지 멀쩡하게 사용하고 있다. 요즘도 매일 마을을 오갈 때나 일요일마다 5㎞ 가량 떨어진 성당 미사에 갈 때에도 이 자전거를 탄다.

“말 못하는 자전거지만 55년간 우리 가족에게는 은인같은 존재였어요.”

남씨는 과거 삼베 쌀 가죽 장사 등으로 업종을 바꿀 때마다 이 자전거와 동고동락해 왔다.

20여필의 삼베를 싣고 장이 열리는 충북 제천까지 가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왕복 300여리를 달려야 했을 때 이 자전거는 말없이 친구가 돼 주었다. 무거운 쌀가마를 싣고 시장통을 누빌 때도 큰 고장 없이 지탱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동안 좋은 국산 자전거가 수없이 나왔지만 이런 가족같은 자전거를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가족이 병이 나면 애를 태우며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듯 자전거가 고장나면 부속품을 찾아 헤맸다. 소가죽 안장도 두 차례 바꾸었다.

남씨는 “이 자전거는 우리 가족의 생계는 물론, 건강까지 유지시켜 준 소중한 존재”라며 ‘노(老) 자전거’를 쓰다듬었다.

<평창〓경인수기자>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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